영천뉴스24/시와 연애를 하자(장병훈 편집위원) 63

湖水 1 - 정지용 (1902~1950)

湖水 1 정지용 (1902~1950)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그리움은 흑백이다. 정지용 시인이 누구인가? 월북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그래서 오랫동안 주옥같은 그의 작품들이 빛을 보지 못했었지. 다행히 1988년 해금 이후로는 그 어떤 시인의 작품..

삼킬 수 없는 것들 - 나희덕(1966~)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여러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 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가는 소리 유안진(1941~) 비 가는 소리에 잠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차표 한 장 - 강은교(1945~)

바람이 그냥 지나가는 오후, 버스를 기다리고 있네, 여자애들 셋이 호호호― 입을 가리며 웃고 지나가고, 헌 잠바를 입은 늙은 아저씨, 혼잡한 길을 정리하느라, 바삐 왔다갔다하는 오후, 차표 한 장 달랑 들고 서 있는 봄날 오후, 아직 버스는 오지 않네 아직 기다리는 이도 오지 않고, 양털 구름도 오..

포도알 속에도 씨가 있다 - 이선영

장병훈 편집위원 siijang@hanmail.net 포도알 속에도 씨가 있다 이선영 이 작은 포도알 속에도 몇 개의 딱딱한 씨가 들어있다 이 물컹한 포도알 속에도 무너질 수 없는 어떤 결심인 양 씨가 들어있다 입안에서 터지는 이 부드러운 포도알 속에도 그냥은 삼킬 수 없는 응어리라는 듯 씨가 맺혀있다 이 달콤한 ..

주산지 왕버들 - 반칠환

주산지 왕버들 반칠환 (1964~ ) 누군들 젖지 않은 생이 있으랴마는 150년 동안 무릎 밑이 말라본 적이 없습니다 피안은 바로 몇 걸음 밖에서 손짓하는데 나는 평생을 건너도 내 슬픔을 다 건널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은 왜 낙타로 하여금 평생 마른 사막을 걷도록 하시고, 저로 하여금 물의 감옥..

콩깍지 혹은 집 - 손진은

장병훈 편집위원 siijang@hanmail.net 콩깍지 혹은 집 손진은(1959~) 어떤 힘이 그를 잡아당기는 것일까 몇 남지 않은 햇살이 문을 두드릴 때 나태와 욕망에 가볍게 물들어 있는 영혼들 두근거리는 숨결로 술렁거린다 여린 빛줄기며 구름 이슬과 바람 속에서 그들 몸을 키울 때 따라 커가는 집들 마침내 그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