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개혁성향이 강했던 훈수 정만양·지수 정규양 형제는 시경에 나오는 ‘맏형은 흙으로 만든 나팔을 불고, 동생은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분다’에서 나온 훈지로 호를 지어 형제간의 우애를 나타냈고 많은 저술도 ‘훈지록’이라 했다.
또 자손의 이름도 ‘훈지’ 두 글자의 변과 머리를 따서 짓도록 유명(遺命)하여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이것을 봐도 양수선생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훈수선생은 1664년(현종 5) 안동 임하 천전리 외가에서, 지수선생은 1667년(현종 8) 대전동에서 태어났다.
양수선생은 어릴적부터 남다른 데가 많았고, 남을 조롱하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1701년 정만양이 먼저 시냇물이 가로질러 흘러 빗거랑으로도 불린 횡계로 이사하고 5년 뒤에 정규양이 뒤따라 옮겨옴으로써 학문연구에 더욱 힘쓰게 되었다.
완귀정과 함께 근경이 아름다운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옥간정(유형문화재 제270호)은 양수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숙종 42년(1716)에 세운 정자로 영의정 조현명, 형조참의 정중기, 승지 정간 등 많은 명현과 석학들을 배출했다. 그 후 나라에서 수차 관직을 제수했으나 사양하고 일생동안 학문에만 전념했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4칸반의 ‘ㄱ’자형 누각건물로 창호구성 방법 등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특히, 여름철이면 정자 밑을 흐르는 계곡물에서 피서를 즐기기 위해 가족단위로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옥간정에서 자천 방향으로 조금 떨어진 모고헌(유형문화재 제271호)은 정규양이 25세때 집을 짓고 태고와라 이름한 곳으로 태고와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져 있다.“집을 태고로 일컫는 것은 무엇인가.
질박하고 누추한 것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 세상의 사람이지만 마음은 태고이다.”이 건물은 사방으로 탁 트인 일반 정자와는 달리 가운데 작은 방이 있고 둘레로 작은 마루가 빙 둘러 놓여져 있으며 옆과 뒤쪽은 막혀 있다. 트여있는 앞쪽에 앉아서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굽이쳐 흐르는 물소리는 무릉도원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횡계서당은 원래는 서원이었으나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서당으로 남게 되었으며 안마당에 있는 향나무는 당시 정각사의 스님이 주신 2그루 중의 하나이며, 한 그루는 대전동의 호수종택 앞에 심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흔히 ‘자단치경(紫檀稚莖)’으로 표현되는데 자단이란 보라색을 띤 박달나무이니 향나무의 나무결을 뜻하는 듯하며 치경의 치는 어리다는 뜻이요 경은 줄기이니 즉 무늬가 아름답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나무이니 비록 어리지만 소중히 잘 길러야겠다는 정신이 잘 표현된 말이다.
이 나무에는 사방에서 모여드는 어린 제자들을 하나 하나 어린 벼이삭 가꾸듯 정성껏 가르치고 길러서 아름다운 무늬가 생기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도록 소중히 다루었다는 거룩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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