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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와 그 위에 지어진 호연정
범월병, 서운암, 하수구, 만세정, 야연층, 적파선, 정부장, 사박협, 청통사….
영천향토사연구회(회장 이임괄)에서는 24일 3백여년 전 병와 이형상 선생이 지은 시조에 나오는 성고구곡(城皐九曲)을 찾아 나섰다.
1702년(숙종28)에 지은 연시조 한편을 근거로 삼아 지형과 물길이 바뀐 3백년 전의 절경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다소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위안을 삼았다.
1957년 11월 25일에 찍은 영천성당 사제관(성사헌) 축성 모습
1957년 11월 16일에 촬영한 영천성당 성사헌 축성 모습
향토사연구회 사무실에서 간단한 자료를 검색하고 회원들간의 토의를 거친 후 한시에 나오는 지명을 음미하며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일곡 범월병(泛月屛)과 이곡 서운암(棲雲巖), 육곡 적파선(寂波禪), 칠곡 정부장(鼎扶莊)은 대충 짐작만 될 뿐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으나 삼곡 하수구(下水龜)는 거북바위, 사곡 만세정(晩洗頂)은 영천성당 구사제관인 성사헌 밑, 오곡 야연층(惹烟層)은 철교 너머, 팔곡 사박협(沙搏峽)은 영천여고 뒤편 모래톱, 구곡 청통사(淸通社)는 쌍계동 청통역으로 유추해볼 수 있었다.
철교너머쪽과 영천여고 뒤편 지점을 야연층과 사박협으로 추정했다.
만세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영천성당으로 올라갔다.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나눔의 집에서 영천본당 70주년 역사를 기념해 전시해놓은 귀중한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1957년 11월 16일과 25일에 찍은 사제관 별관인 성사헌 축성사진과 30~50년대 영천의 거리 사진이 특히 감명 깊었다.
영천향토사연구회원들이 영천성당 70주년 역사 사진들을 감상하고 있다.
1930~50년대 영천의 거리. 다리 앞부분에 호연정이 보인다.
성당의 양해를 얻어 들어간 성사헌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금호강에 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며 감상하던 그 옛날의 모습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빗물 머금은 날의 영천은 아직도 비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위에서 본 성사헌
아래에서 올려다본 성사헌
잠시 1700년대의 감상에 젖어 있다가 금강산성 표석비가 쓰러져 있다는 한 시민의 제보에 따라 삽과 곡괭이를 들고 그린환경센터 뒤편의 금강산으로 올라갔다. 등산객중 누군가가 넘어진 표석비를 다시 세워두기는 했으나 많이 불안한 상태라 땅을 다시 파서 고른 후에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산을 내려왔다.
금강산성 표석비를 다시 세우고 있는 회원들
향토사연구회원들은 점심식사를 하고나서 평가회의를 겸해 호연정에서 한낮의 풍류를 즐길 수 있었다.‘병와 선생과 당시의 선비들이 느낀 감정이 아마 이러했을 테지’우수에 찬 강물을 바라보며 마시는 오디주와 포도주에 조선시대의 선비가 된 기분이 들었다.
城皐九曲(성고구곡)
總 論(총론)
천고의 유반(幽盤)이 지령(地靈)에 속하여
지금까지 산 빛은 시내에 가득히 밝네
회암(晦庵)이 읊었었고 도산(陶山)이 화답했으니
나 역시 성고에서 뱃노래를 짓네
一曲 泛月屛(일곡 범월병)
일곡이라 깊은 여울에서 월선(月船)을 띄우고
뱃노래 부르며 이따금 다시 앞 내를 지나네
까닭없이 장군각(將軍閣)에 한번 앉아보니
아침 저녁에 일만의 집 연기만 머금고 있네
二曲 棲雲巖(이곡 서운암)
이곡이라 기이한 바위 자연히 봉우리를 이루었는데
서운암(棲雲巖) 깊은 곳에 속세를 사절하였네
선심(禪心)은 이미 승명려(承明廬)에 숙직하길 싫어하니
이 몸은 어떤 인연으로 구중궁궐(九重宮闕)에 들어갈까?
三曲 下水龜(삼곡 하수구)
삼곡이라 하뢰선(下瀨船)을 천천히 당겨 놓고
구암(龜岩)을 자리 삼고 술로 해를 보내네
산과 물의 자연히 연하(烟霞)의 취미 만족하니
무엇 때문에 관문(官門)에서 부질없이 동정을 구하랴
四曲 晩洗頂(사곡 만세정)
사곡이라 층층히 큰 바위 솟아있는데
한 그루 깡마른 나무 푸르게 늘어져 있네.
밝은 모래 호묘(浩渺)하고 여울 물소리 굴러가니
갈라져 가는 그 곳을 만세담(晩洗潭)이라 일컫도다
五曲 惹烟層(오곡 야연층)
오곡이라 물 굽이 돌아오고 골짜기 다시 깊은데
이 언덕을 사람들은 야연림(惹烟林)이라 부르네
그대는 필경에 모든 물 바다로 모임을 보았는가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만리의 마음 알게 되리
六曲 寂波禪(육곡 적파선)
육곡이라 여울물 아홉 번 돌고 돌아 흘러서
밝은 달 맞이하려 밤이면 관문(關門)에 이르네
푸른 산은 말이 없고 물결 빛은 고요하나
고요한 곳이 한가함이 아니라 움직이는 곳이 더 한가하네
七曲 鼎扶莊(칠곡 정부장)
칠곡이라 낚시대를 제칠의 여울에 드리우니
정부장(鼎扶莊)의 좋은 풍치(風致) 그 누가 볼까?
양(羊)의 갗 옷 이끼 낀 낚시터에 벗어 놓으니
못 그림자 이제에 달빛 받아 차가웁네
八曲 沙搏峽(팔곡 사박협)
팔곡이라 여기 저기 어디에나 밝은 빛 열렸고
크고 작은 봉우리 읍(揖)을 하듯 물을 따라 돌아오네
물가에 다달아서 추천(推遷)하는 의리를 곰곰이 살펴보니
사박협(沙搏峽) 못만나 물이 또한 오지 않네
九曲 淸通社(구곡 청통사)
구곡이라 좋은 경치는 땅의 형세가 원래 그래서인가?
뒷 냇물의 형승(形勝)이 앞 냇물의 형세보다 더 낫네
청통역(淸通驛)서 하고 하는 일이란
반은 인간에서이고 반은 마상(馬上)에서일세
(1702년 숙종28 壬午 병와가 지었고 密城 孫貴睦이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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