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답사와 여행이야기(이원석 편집위원)

[스크랩] 자양 성곡리 유적(강호정 등)

이원석(문엄) 2007. 7. 15. 23:35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맑은 날을 기다리며 하루, 이틀이 지났고 어느덧 수요일. 원고마감도 마음에 걸렸고 비 오는 날의 산행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김밥을 주문하고 물과 음료수도 챙겼다.

미리 식사를 해결하고 출발해도 무리는 없었지만 혼자 산에서 도시락을 먹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었다.추수가 끝난 시간의 여유로움을  간직한 들녘을 지나 영천댐에 이르니 굵어지는 빗줄기와 함께 하늘과 산, 물이 하나였다. 김민기가 불렀던 ‘친구’가 생각났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비 오는 날의 영천댐 물은 원래 이런 색이었던가? 오늘따라 유난히 누렇게 보이는 댐 물을 생각하고 있는데 코오롱 마라톤 선수들이 달려온다. 마라톤 선수들은 비가 와도 쉬지않고 연습을 하는 모양이다.시청에서 18㎞.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천 정씨 문중묘소인 '하절'과 유형문화재 71-76호로 지정된 강호정, 하천재, 오회공종택, 오회당, 사의당, 삼휴정이 어우러진 곳. 지난해 여름 첫 방문 후 느낌이 너무 좋아 울적할 때마다 찾고 싶었던 곳이다.

누렇던 댐 물도 강호정 앞만큼은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아직 지지 않은 마지막 단풍잎이나 바닥에 떨어진 샛노란 은행잎을 밟으면서 비록 혼자였지만 늦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입구에서부터 호수 정세아 장군이 임란 후 고향에 돌아와 자호언덕에 정자를 짓고 여러 교우들과 학문을 강론했던 강호정, 오천 정씨 문중의 묘소와 강의공 정세아의 신도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진주목사인 정호인이 창건한 하천재, 정세아의 넷째 아들인 수번이 그의 셋째 아들 호신의 분가주택으로 건립한 오회공종택, 정석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관찰사 권대규의 후원으로 건립한 오회당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중호·중기·중범·중락 4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사의당과 삼휴 정호신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하여 건립한 삼휴정이 역사의 풍광을 보여준다.정호신이 조부인 호수 정세아가 살았던 곳에 정자를 짓고 그 풍경을 노래한 ‘삼휴’는 당시의 선비들이 즐겼던 풍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좋은 봄날 꽃을 즐기다가 꽃이 지면 쉬고 맑은 저녁달을 즐기다가 달이 지면 쉬고 한적한데 술을 덜어 즐기다가 술이 다 되면 쉬노라”임진왜란 때 큰공을 세우고도 논공행상에 개의치 않고 여헌 장현광, 지산 조호익 등과 함께 학문을 논하며 조용히 여생을 마친 호수 선생이 강론했던 강호정. 대문 한 짝이 뜯겨져 있었다, 누가 그랬지. 화장실 문짝은 둘 다 뜯어 놓았다. 방문들도 여러 짝 떨어져 나갔다.하천재 마당엔 고추와 배추가 심어져 있고 곳곳에 나무토막과 캔,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오회공 종택은 그나마 조금 낫다. 사의당은 완전히 폐허를 방불케 한다.

문짝은 말할 것도 없고 마루의 송판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천정과 벽에 균열이 생겨 벽체가 흘러내리면서 벽속의 나무가 드러난 곳도 많았다.지난 여름에 찾았을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태풍으로 갑자기 이렇게 망가진 걸까?

다른 지방에서는 없는 문화재도 새로 만들려고 난리들인데 좋은 조건을 갖춘 문화재를 이런 식으로 방치하여 훼손시킨다면 우리들의 후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는 집은 한여름과 한겨울의 기온 차가 15℃ 내외에서 유지가 되는데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기온 차가 최고 40。C까지 벌어지기 때문에 평방의 도리부분과 문짝의 쩌귀부분 등이 비틀어지게 된다고 들은 적이 있다.보수보다 관리가 훨씬더 큰 문제일 것 같았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도둑들의 손도 많이 타게 될 것이고.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하절로 발걸음을 옮겼다.

묘터로서는 영천에서 가장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진 하절은 꼬깔산의 운무와 함께 절경을 보여주었다. 맨 윗쪽 호수공 부부의 무덤을 비롯하여 눈어림으로 세어보니 1백 여기 정도 되어 보였다. 백암 정의번 무덤앞의 작은 무덤에 ‘충노억수지묘’라는 비석이 서있다. 경주전투에서 주인을 구한 충성스러운 종 억수를 기리기 위한 무덤인데 400년 동안 오천 정씨 후손들로부터 제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시로 말을 바꾸고 권모술수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을 보고 억수는 어떤 말이 하고 싶어질까?

이곳에서는 꼬깔산(2.5㎞), 기룡산(5.8㎞), 묘각사(7.8㎞)로의 등산로가 비교적 잘 닦여져 있어 가족이나 단체의 산행도 즐길 수 있으며 어린 자녀들을 동반한 경우라면 1.5㎞정도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산행 후에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충효삼거리에서 화북방면으로 들어가 진한 부부애를 느낄 수 있는 오원복 노인의 무덤을 들러보고 옥간정에서 정만양·규양 양수선생의 형제애를 느끼는 것도 보람된 여정이 될 것이다.

출처 : 영천뉴스24(yc24.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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