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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상리 성지 |
“백학서원은 … 1555년(명종 10)에 세웠으며 … 백학산 아래이자 양강소 위에 …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에 불타버리고 … 1612년(광해군 4)에 다시 세우다 …”라는 내용이 화산지에 나온다.

▲ 백학서원 터
이 기록으로 미루어 이곳에는 백학서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과 묵은 기와조각들이 남아있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곳은 그 옛날 화주(花洲)고을을 지키는 군인들의 집결지였다고 하는데 뒤에는 산이 도사리고 있고 앞에는 험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으며 시야가 넓고 산중턱의 평탄한 곳은 지형적으로 약간 낮아서 요새지로 매우 적합했을 것으로 보인다.

▲ 구의헌공묘소 입구, 여기서 모산마을로 들어간다.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시안미술관 조금 못 미쳐‘안동권씨 신녕입향조 구의헌공 묘소’라고 적힌 안내표지석에서부터 답사를 시작했다. 농로를 따라 모산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도로사정이 생각보다 험했다. 몇 번인가 자동차의 밑바닥이 땅에 부딪쳤다고 느끼며 1㎞정도 들어가니 모선재(慕先齋)가 나왔다.

▲ 모선재
1429년(세종 12) 문과에 급제, 사헌부 지평과 광주목사 등을 지낸 입향조 구의헌공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여러 차례의 중수 끝에 1972년에 개축되었다. 좌측에 2칸과 우측에 한 칸의 방을 두고 가운데 2칸의 대청과 앞쪽에 쪽마루를 단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오학정(烏鶴亭) 액호와 호조참의를 지낸 휘 처정(處貞)의 태암정(泰庵亭) 액호도 함께 걸려있다.
정자 주위의 울창한 대나무를 보면서 후손들에게“학문을 하더라도 벼슬에 나아가지 말고 길쌈하며 밭 갈고 부지런히 살라”는 교훈을 남긴 구의헌공의 청빈함과 절개가 느껴지는 듯했다. 건너편 산기슭에는 묘소와 유허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여러 자손들의 묘와 묘비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모선재에서 가상리 성지와 백학서원 터로 가기 위해서는 인적이 드문 산길을 따라 10여리 정도 들어가야만 당도할 수 있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 산림에 묻혀버린 산길을 더듬으며 양강소 덤 위에 올라서니 무더운 한낮의 더위를 씻어주기라도 하듯 삼창ㆍ선천ㆍ화동ㆍ대천ㆍ사천들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마중한다.

▲ 모산안못
먼 옛날 성터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못 터도 있고 논과 밭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었다. 덤 밑에는 규모는 작지만 연륜을 자랑하는 백학산 대성사가 언제나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상리 성지는 동서의 깎아지른 듯한 경사지를 이용하고 표고(標高) 100m 정도의 산등성을 따라 쌓은 주위 720m, 높이 1m 정도의 성으로 마한과 대항하기 위해 화동성주가 축성했다고 전한다.
부근에서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고 성을 쌓았던 돌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토석혼축성으로 성벽의 넓이는 2.5m~3m이고 높이는 1m, 길이는 약 250m 정도 남아있다. 성지 내에 직경 3m, 높이 1m 정도 남아있는 흔적이 봉수대 자리라고 전하나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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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학산 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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