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답사와 여행이야기(이원석 편집위원)

“세계 각국에 내 이름을 내어달라” - 영천 북안 서당리 맹자골 미륵불

이원석(문엄) 2007. 3. 17. 11:59
▲ 북안면 서당리 맹자골에 자리잡은 미륵불 부부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가운데 하나로,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북안면 서당리 맹자골을 찾았다.

 

▲ 김순희씨가 미륵불을 모시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축대를 쌓은 안쪽에 두기의 미륵불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그 앞으로 항아리와 화분이, 뒤쪽에는 여러 개의 큰 돌들이 찬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옆에는 조립식으로 산신각을 지었고 컨테이너와 조립식으로 지은 관리사가 앞쪽에 있었다. 동네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절로 보임직한 제법 큰 건물도 보였다.

 

 

매일 아침마다 물을 갈며 부처님 공양을 하고 있다는 박근수(78)-김순희(73) 부부가 이 마을로 들어온 것은 지난 2002년. 이 동네에서 자라 19세부터 50여 년 간 부산에서 살고 있던 김씨의 꿈에 미륵불이 여러 번 나타나 쉬는 날 혼자 찾아 들어와서 헤매던 중 축대를 쌓은 부분에서 머리가 없이 쓰러진 할매불을 먼저 발견했다고 한다.


며칠 후에 산 아래 계곡에서 역시 목이 없이 뒹굴고 있던 할배불을 찾아 경주 아화에 있는 석공집에 의뢰해 머리를 새로 붙이고 파손된 부분을 보수했다. 집을 짓고 불상의 방향을 약간 틀어서 앉혔으나 마을 사람들이 미륵불은 허공에 모셔야 된다고 해서 집을 철거했고 대신 왼쪽에 산신각을 지었다. 또 청송산에서 큰 돌들을 사와 단 받침과 부처 뒤에 세워두었다.

 

 

맨처음 이곳을 찾아올 때처럼 미륵불과 김씨 사이의 대화는 모두 꿈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왜 결혼식 안 올려주느냐”고 해서 사월 초파일날 사모관대 사서 혼례식을 했고 도랑물을 2년간 사용하다가 너무 힘들어 부산으로 돌아가려고 하니“지하수 파면 물 나온다.”고 알려줘 식수도 확보했다.


미륵종불로 부르고 있었더니 꿈을 통해 미륵불로 고쳐 부르라고 했고 김씨의 몸이 좋지 않을 때면 미륵불의 색깔이 빨간색으로 보인다고.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인자한 미소로 앉아있는 미륵불 부부가 꿈속에서 김씨에게 말했다는 소원은“세계 각국에 내 이름을 내어달라”였다고 한다.


전민욱 경상북도문화관광해설사는“미륵불의 조성연대는 고려초기가 일반적이다. 조만간 전문가를 초청해 문화재적 가치를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륵불은 범어로는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 阿逸多)이다. 성인 미륵은 자씨(慈氏)로 번역되어 흔히 자씨보살로도 불린다. 인도의 바라나시국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며 수도했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에 올라가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지나친 욕심이나 번뇌망상으로 인한 방황이 없는 세계이며,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의 무리가 모여 사는 하늘나라를 뜻한다.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 7천만년이 되는 때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해 화림원(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용화삼회’라고 하는데,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기 이전까지는 미륵보살이라 하고 성불한 이후는 미륵불이라 한다. 이 보살은 부처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에서‘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 천불 가운데 제5불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