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문화·예술

"바위산 정상에 석탑이 있었다” - 진불암 일대에서 석탑 잔재 발견

이원석(문엄) 2006. 11. 21. 11:58

 



▲ 바위산 정상에서 이수춘씨가 비로봉과 동봉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영천향토사연구회(회장 이임괄)에서는 11월 18일 진불암 건너 바위산에서 석탑을 찾았다. 지난 4월 22일 청통 안신원의 절골과 5월 13일 뒤치방골 폐사지에 이어 또다시 향토문화사랑에 따른 노력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불상을 찾아서’란 주제로 전개된 이번 답사는 지난 3월 19일 영천향토사연구회의 1차답사와 이 소식을 전해들은 경북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 및 학생들의 4월 15일 답사에 이어 진불암 일대에서 3번째 전개된 것이다.

 

이 일대에 불상이 있었다는 근거는 1942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두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유물과 문화재 및 사찰과 탑 등 크기와 위치, 보관상태 등의 기록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사와 진불암 사이에 거대한 화강암 석굴이 있고 그 가운데 높이 3척(약 1m) 흉폭(가슴폭) 1척8촌(3~4cm)의 좌불상 1기와, 높이 3척 4촌 흉폭 1척 2촌, 높이 22척 5촌 흉폭 1척 2촌의 수호불 2기, 그리고 근처에 마멸이 심하고 부서진 불상을 포함 총 4기의 불상이 있음이 명기되어 있다.

 

2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3월 19일 영천향토사연구회정기답사 때 수도사에서 출발 치산계곡을 거쳐 진불암까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화강암 석굴을 찾고 진불암의 주지스님과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질의 조사를 하기도 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어 4월 15일 경북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 및 학생들이 재차 답사에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대략적인 정리를 했다.

 

“팔공산 아래 진불암 계곡의 암석지 내의 일부로서 수도사에서 약 20정(町, 1정=109.091m/dir 2.2㎞), 진불암에서 수 정(약 400~500m?)의 산복(山腹, 산중턱)의 거대한 화강암 굴 중에 자연석에 조각된 높이 3척(尺)(약 90㎝), 흉폭 1척 8촌(寸)(약 54㎝)의 좌불 1체(體), 높이 3척 4촌(102㎝), 흉폭 1척 2촌(37㎝) 및 높이 2척 5촌(76㎝), 흉폭 1척 2촌(37㎝)의 수호불(守護佛) 각 1체(협시보살로 추정)가 있다.

 

표면에 균열이 있지만 거의 완전하고, 다른 2체도 일부 파손된 부분이 있지만, 거의 완전에 가깝다. 더구나 부근에 분쇄되어 없어져 버린 것 2~3체가 있다.”

 

이번에 영천향토사에서 11월 정기답사로 다시 진불암 일대를 택한 것은 한 시민의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등산을 취미삼아 수십년간 전국의 유명산을 찾아다녔다는 이수춘(완산동, 68)씨가 팔공산을 등산하면서 파손되어 방치된 탑재를 봤다고 알려왔다. 원래 19일 정기답사에 동행할 예정이었으나 이씨의 사정으로 18일 갑자기 예비답사를 떠나게 된 것이다.

 

정상적인 등산코스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발견하기는 힘들었을 테고 설령 보았다고 하더라도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웠을 것이다.

 

이씨의 안내로 영천향토사연구회 이임괄 회장, 김종식 직전회장(경상북도문화관광해설사)과 함께 치산으로 향했다.

 

▲ 공산폭포를 좀 지난 지점에서 비탈을 타고 산위로 올라갔다. 

 

꼭 찾아야한다는 생각에 공산폭포를 조금 지나 진불암 1.3㎞, 동봉 3.2㎞가 적힌 팻말에서 왼쪽 비탈을 따라 산꼭대기 쪽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다닌 흔적대신 산짐승의 배설물과 동물들이 부러뜨린 것으로 짐작되는 나뭇가지 등을 볼 수 있었고 깊고 깊은 산속에서 태고의 신비함을 느끼기도 했다.

 

방향만 잡고 무작정 걷기를 2시간여 진불암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생각할 즈음 저 앞쪽에 큰 바위돌이 보였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는 어르신의 목소리에 쳐다보니 절벽 아래쪽으로 큰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있었고 정상 부분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탑재들이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 바위산은 등산로와 떨어져 있어서 일반인들의 발길이 뜸하다.

 

▲ 바위산 정상에 석탑의 잔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건너편 산중턱에 진불암이 평온하게 자리 잡고 앉아있었고 머리를 들어 앞쪽을 바라보니 레이더 기지와 비로봉이, 통신시설 왼쪽에는 동봉이 한껏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 건너편 산중턱에는 진불암이 평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바위산 중턱 어딘가에 거대한 화강암 굴이 있고 그 굴속에 석불이 있을 것만 같은데 산세가 험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아쉬움을 잔뜩 안은 채 결국 바위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내려올 때는 좀 수월해 보이는 반대편 내리막길을 택했다. 산을 내려온 후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동봉 1.5㎞, 수도사 3.5㎞ 지점과 합류했다.

 

내려오는 길에 이수춘씨가 큰스님으로 불리며 10여 년 전 진불암을 관리했다는 삼봉스님(69)으로부터 화를 막기 위해 산꼭대기에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등산 붐이 일면서 진불암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전까지 암자에 기거하면서 등산로를 관리하고 자기정진을 했다는 삼봉스님은 강원도 화천 출신으로 암자를 내어주고 난후 골짜기에서 움막을 짓고 4~5년간 생활하다가 지금은 군위 고로의 압곡사 인근 보림농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 산 일대의 사정에 밝아 유용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영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통화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의 김태훈 연구원은 “팔공산을 조사하던 중 진불암 주지스님께 바위산 정상의 탑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좀더 자세히 조사해보면 절터와 불상 등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김종식 회원의 안내로 탑을 찾아간 향토사회원들은 화강암 굴속의 불상을 찾기 위해 험한 바위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등 숱한 노력을 기울이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불상을 찾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도 태고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골 깊은 산속에서 탑을 찾은 것으로도 일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하고 앞으로도 우리고장 문화유산 찾기 운동을 계속 전개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