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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물소리…길손반기는 고즈넉한 산사-수도사 진불암

이원석(문엄) 2006. 11. 21. 11:40

 

 

“팔공산 비로봉에 자리한 진불암은 청정하고 고색창연한 도량일세.

요산요수하는 벗님들이여 잠시 숨을 고른 후 부처님께 경배하고

넉넉한 인심으로 반기는 스님과 차 한잔함은 어떠하리오.“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다.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할 수 있는 수도사 진불암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천년고찰 수도사에서부터 팔공폭포를 거쳐 고즈넉한 암자 진불암의 기둥을 만져보고 내려오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초가을의 설레임만큼이나 웅장한 폭포, 6㎞나 이어지는 울창한 산림에 잠시나마 시름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댐 물을 방류할 때 사이펀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언제 물이 불어날지 몰라서 멋모르고 개울에 들어가 있다가 급작스레 물이 불어나면 피할 길이 없다는 경고판을 바라보며 포장된 길을 오르다보니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온천공사현장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니 지난해 태풍 ‘매미’로 인해 입은 피해를 치유하기 위한 치산지 수해복구공사를 하고 있었다.

 

647년(신라 선덕여왕 14)에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수도사의 창건 당시 이름은 금당사였는데 큰 화재를 만나 소실된 후 재건되면서 원효대사가 수도했다고 해서 수도사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절 마당에 있는 중창불사 조감도를 보니 원통전이나 삼성각, 선원 등 현재의 건물 외에도 지장전과 보해루, 돌탑 등 옛 풍요를 회복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노사나불괘불탱은 1704년에 그려져 1822년 한차례 개수한 것으로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71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화면 가득 노사나불을 그린 독존형식의 괘불이었다. 괘불이란 절에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 대형 불화로 이 괘불의 노사나불은 둥근 얼굴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연꽃가지를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는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보관 주위에는 비로자나불 형태의 조그만 불상이 7개 있으며 머리 뒤편에는 둥글게 광배가 둘러져 있었다. 둥글고 풍만한 어깨 양쪽으로는 붉은 천이 걸쳐져 있었으며 머리가 팔꿈치 부분까지 흘러 내려와 있었다. 옷의 아래 부분과 등 뒤의 광배는 하늘색으로 나타냈고 등에서 머리 위쪽까지는 오색광선을 그려 넣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었다.

 

둥그스름한 얼굴과 어깨, 약간 처진 눈썹, 진한 색상 등 조선 효종· 숙종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수도사에서 1㎞정도 더 올라가면 팔공폭포가 나온다. 여유롭게 휴일을 즐기기 위한 웰빙족들의 텐트가 여럿 눈에 띄었다. 이 폭포는 높이 약 30m, 폭 10m의 3단폭포로 수량이 풍부하여 경관이 수려하고 물 또한 맑아서 치산계곡의 명물로 손꼽힌다. 폭포의 아름다움에 반해 산행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주저앉아 버리는 등산객들도 더러 있었다.

 

폭포에서 빠져나와 임도를 따라 100m정도 더 올라가면 ‘신녕재 2.4㎞, 동봉 5㎞, 진불암 2.5㎞’라 적힌 안내판이 나타난다. 여기서 진불암은 오른쪽 방향이다.

 

몇 해 전 태풍으로 인해 계곡이 일부 유실되었지만 개울을 건너는 데는 그다지 무리가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을 듯했다.

 

여기서부터는 좀 가파른 길이 이어지는데 여유를 가지고 보폭을 줄여 쉬엄쉬엄 걷는다면 노약자나 어린이들에게도 그다지 힘든 코스는 아닐 듯했다.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에 의해 안내표지판의 숫자가 떨어져 나간 것이 못내 아쉽긴 했지만 20여분을 지나니 부도탑 2기가 나타났고 다시 20여분을 더 걸으니 진불암이 나타났다.

 

암자 앞쪽으로는 동봉과 염불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쾌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뒤편에 있는 감로수는 더위에 지친 등산객들의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었다. 한숨 돌린 후 경치를 감상하고 있으니 스님이 암자를 찾은 손님들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인정을 나타냈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해서인지 놋그릇을 닦는 모습과 전통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가마솥이 인상 깊었다. 신라 진평왕 (632년)때 창건되어 무수히 많은 고승을 배출한 진불암의 현존건물은 고려 문종 때 혼수국사가 중건한 건물로 1637년 이응선씨와 1813년 등월, 월하 두 스님이 다시 중수하였다.

 

삼국유사에 기록될 만큼 명찰로서 후면에는 청정법신, 전면에는 대자대비하신 관음봉, 우측에는 실행제일, 좌측에는 지혜제일인 문수사리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난 1944년 대구의 소위 80연대라는 일본병영에서 탈출한 5명의 학병들이 이 절의 다락에 숨어 있었는데 일본 헌병대가 탈영병들을 찾아 이곳에 들이닥쳤으나 너무나 태연한 노스님의 모습에 기가 꺾여 철수했고 학병들은 무사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대구에서 왔다는 3명의 등산객을 하산 길에 만났다. 그중 한 명이 “나도 불자이지만 우리는 단순히 산이 좋아 등산을 왔을 뿐인데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하긴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수도사는 아예 들어가 보지도 않고 곧바로 산으로 올라가는데 따로 관람료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예 절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해서 절의 손님에 대해서만 받는다면 몰라도.

 

수도사부터 산행을 시작한다면 진불암까지 성인 남자라면 1시간 정도, 어린이나 노인들을 동반한 경우라도 2시간이면 넉넉할 것으로 보였다.

등산의 계절 가을을 맞아 단풍이 물든 호젓한 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잘 오셨습니다.

반가운 분이여!

차나 한잔 하실까요


땀도 식히시고

시원한 산물 한바가지 벌컥 들이키고

고개 젖혀 하늘 한번 쳐다보소

빙 둘러 늘어선 앞산 등성이들

힘차게 솟구친 뒷산 비로봉도

숲 속 길 그윽한 자연향

내 마음 맑히고

아래계곡 쳐 오르는

세찬 바윗물소리

속세에 멍청해진 귀 뚫어 씻어주니

정신이 청정하고

힘이 솟구치는구나

그래

내 오늘 멋진 신선 되고

한가로운 도인이 되자

아!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던가

세상이 그렇고 시대가 그렇다하더라도

내 마음 내 뜻 그리 휘둘리지 말고

진흙탕에 피어난 연꽃처럼

허상에 물들이지 않고

사물을 바로 보고 바르게 생각하며

말하고

상황 또한 바르게 판단하며 바르게

행동하고

뜻있는 일에 노력하여 소박하고 품격 있는 삶

여유 있고 윤택한 숲 속 내음 싱그러운

새소리 영롱히 빛나는 사람 맛 나는 길

그래 그 길을 걷자


모든 보이는 것은 죄다

자기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도가 무엇이기에 닦으려 하고

번뇌가 무엇이기에 끊으려 하는가

마음이 있으면 모두가 괴롭다

마음이 없으면 비로소 즐겁다”


진불암 게시판에 써놓은 제목과 작가 미상인 한 편의 시에서 삶의 여유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