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의 자연환경
채약산(499m)에서 북으로 뻗은 일지맥이 급히 낮아져서 구릉야산을 형성하고 또 평야가 전개되어 그 끝에 금호강이 감돌고 있다. 강 건너에는 유봉산의 연봉들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구릉야산들이 펼쳐져 있다.
2) 마을의 역사
▶ 가암(佳岩) 마을에 있는 아홉 개의 바위가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구암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이 마을에 있는 구암지 둘레에는 수령 200년이 넘고 높이 30m나 되는 큰 버드나무 72그루가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가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고 해마다 음력 보름날 제물을 차려놓고 정성들여 동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구암(龜岩ㆍ九岩)ㆍ구복(龜伏) 아홉 개의 바위 가운데 한 개가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거북은 길한 동물이라 마을이름에 구(龜)자를 넣으면 좋겠다는 중의에 따라 1914년 칠백면(七百面)에서 영천군 금호읍으로 행정구역 폐합 때 고쳤다고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약 320여 년 전에 평산신씨가 이 마을에 와서 참나무 숲을 제거하고 마을을 개척했다고도 한다.
3) 마을의 특징
- 상로재(霜露齋) : 조선 숙종 때 성균관학정(成均館學正)을 지낸 안곡정(安谷靜) 선생이 선조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세운 재사- 정호재(菁湖齋) : 을묘사화를 일으킨 심정과의 내외종간 정을 끊고 의리를 밝혀 영천으로 이거하여 학문과 자연을 벗삼아 일생을 마친 서숙원(徐叔元) 선생의 묘소 수호를 위해 건립- 동제 : 구암지 주위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에 대한 고마움과 아울러 소원을 성취시켜 달라는 뜻에서 음력 정월보름날에 제물을 차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주는 마을에서 깨끗하고 덕망이 있는 자로 상신(喪身)이나 복인(服人)이 아니며 해산과 관계없는 자를 선정한다.
정월 14일 밤 12~1시 사이에 분향(焚香), 강신(降神), 독축(讀祝)의 순으로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세대주 성명을 족은 백지(白紙)를 태우는데 이를 소지(燒紙)라고 한다. 다음 음복을 하고 15일 낮에 마을 일을 상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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