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자료/영천 지명유래 및 마을변천사

39. 봉죽리(鳳竹里)

이원석(문엄) 2011. 11. 13. 08:56

1) 마을의 자연환경

유봉산의 일지맥이 남으로 뻗어 급히 낮아져서 구릉지를 형성하고 동으로는 구릉지를 넘어 금호강이 굽어보이며 서쪽은 신천(新川), 관정(官亭)의 양리(兩里)가 있고 그 너머에는 넓은 금호평야가 전개된다. 늪지대인 평야와 달리 인류가 생활하기에는 매우 적합한 곳이기에 예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에 적지였다.

2) 마을의 역사

죽방(竹坊), 봉산(鳳山), 곡촌(谷村)으로 된 마을이다. 1720년대에 해주오씨가 개척한 곡촌은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에 못이 있고 그 아래에 모여 산다. 죽방은 김해김씨가 개척하여 대나무를 많이 심어 마을 전체가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였다 하여 붙여졌다.

대나무가 많아 동쪽에 신라시대의 고찰인 죽림사가 있다. 새터는 거여면(巨餘面)이었을 때 새 동네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새태ㆍ새터<新基> 거여면(巨餘面)이 생겼을 때 새 동네가 이루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죽빼ㆍ죽뺑이ㆍ죽방(竹坊) 옛날에 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지금도 대나무가 많이 있다. 거여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1㎞쯤 떨어져있으며 동쪽 산골짜기에 죽림사(竹林寺)가 있다.

▶ 곡촌(谷村) 새터 북서쪽에 위치하며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에 곡촌못이 있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조그마한 마을이다.

▶ 게고개 못ㆍ해현제못(蟹峴堤-) 현재 있는 못은 먼 옛날 천지개벽 당시 바닷물이 올라왔을 때 바다에서 서식하는 게가 고개를 넘어와 못에 살았다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오늘날에는 해현제못이라 부르고 있다.

3) 마을의 특징

- 죽림사(竹林寺) : 신라 헌덕왕 1년(869)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그 후 다시 중건하였으나 6ㆍ25동란으로 폐허가 되어 지금 건물은 그 후에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극락전과 산신각 그리고 요사채가 있으며 극락전은 4칸 단층 팔작지붕이다. 또 건물 앞에는 조그만 탑이 있는데 이 탑은 옛날 해체된 탑재들을 주워 모아 만든 것이다.

봉황(鳳凰), 죽림(竹林), 유봉(遊鳳), 봉산(鳳山), 냉천<冷泉=예천(醴泉)> 등은 모두 상서로운 새인 봉과 관계있는 지명이다. 모두 신월리의 유봉산(遊鳳山)과 관계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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