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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물소리… 길손반기는 고즈넉한 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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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하기 좋은 계절이다.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할 수 있는 수도사 진불암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천년고찰 수도사에서부터 팔공폭포를 거쳐 고즈넉한 암자 진불암의 기둥을 만져보고 내려오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초가을의 호젓함만큼이나 웅장한 폭포, 6㎞나 이어지는 울창한 산림에 잠시나마 시름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댐 물을 방류할 때 사이펀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언제 물이 불어날지 몰라서 멋모르고 개울에 들어가 있다가 급작스레 물이 불어나면 피할 길이 없다는 경고판을 바라보며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오르다보니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온천공사현장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니 지난해 태풍 ‘매미’로 인해 입은 피해를 치유하기 위한 치산지 수해복구공사를 하고 있었다. 647년(신라 선덕여왕 14)에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수도사의 창건 당시 이름은 금당사였는데 큰 화재를 만나 소실된 후 재건되면서 원효대사가 수도했다고 해서 수도사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절 마당에 있는 중창불사 조감도를 보니 원통전이나 삼성각, 선원 등 현재의 건물 외에도 지장전과 보해루, 돌탑 등 옛 영화를 회복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노사나불괘불탱은 1704년(조선 숙종 30)에 그려져 1822년(순조 22) 한차례 개수한 것으로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71호로 지정되었다. 화면 가득 노사나불을 그린 독존형식의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 대형 불교그림으로 이 괘불의 노사나불은 둥근 얼굴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연꽃가지를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보관 주위에는 비로자나불 형태의 조그만 불상이 7개 있으며 뒤로 머리 광배가 둥글게 둘러져 있다. 둥글고 풍만한 어깨 양쪽으로 붉은 옷이 걸쳐져 있으며 팔꿈치 부분까지 머리가 흘러 내려와 있다. 옷의 아래 부분과 등뒤의 광배는 하늘색으로 나타냈고 등에서 머리 위쪽까지는 오색광선을 그려 넣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과 어깨, 약간 처진 눈썹, 색상 등 조선 효종·숙종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수도사에서 1㎞정도 더 올라가면 팔공폭포가 나온다. 여유롭게 휴일을 즐기기 위한 웰빙족들의 텐트가 여럿 눈에 띄었다. 이 폭포는 높이 약 30m, 폭 10m의 3단폭포로 수량이 많아 경관이 수려하고 물 또한 맑아서 치산계곡의 명물로 손꼽힌다. 폭포의 아름다움에 반해 산행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주저앉아 버리는 등산객들도 더러 있었다. 폭포에서 나와 임도를 따라 100m정도 더 오르면 ‘신녕재 2.4㎞, 동봉 5㎞, 진불암 2.5㎞’라 적힌 안내판이 나타난다. 여기서 진불암은 오른쪽 방향이다. 지난해 태풍 매미로 인해 계곡이 일부 유실되었지만 개울을 건너는 데는 그다지 무리가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을 듯했다. 여기서부터는 좀 가파른 길이 이어지는데 여유를 가지고 보폭을 좀 줄여 쉬엄쉬엄 걷는다면 노약자나 어린이들에게도 그다지 힘든 코스는 아닐 듯했다.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에 의해 안내표지판의 숫자가 떨어져 나간 것이 못내 아쉽긴 했지만 20여분이 지나니 부도탑 2기가 나타났고 다시 20여분을 더 걸으니 진불암이 나타났다. 암자 앞쪽으로는 동봉과 염불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쾌한 장관을 이루고 있고 뒤편에 있는 감로수는 더위에 지친 등산객들의 목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한숨 돌린 후 경치를 감상하고 있으니 스님이 암자를 찾은 손님들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인정을 나타냈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해서인지 놋그릇을 닦는 모습과 전통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가마솥이 인상깊었다.신라 진평왕 때(632년) 창건되어 무수히 많은 고승을 배출한 진불암의 현존건물은 고려 문종 때 혼수국사가 중건한 건물로 1637년 이응선씨와 1813년 등월, 월하 두 스님이 다시 중수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찰로서 후면에는 청정법신, 전면에는 대자대비하신 관음봉, 우측에는 실행제일, 좌측에는 지혜제일인 문수사리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난 1944년 대구의 소위 80연대라는 일본병영에서 탈출한 5명의 학병들이 이 절의 다락에 숨어 있었는데 일본 헌병대가 탈영병들을 찾아 이곳에 들이닥쳤으나 너무나 태연한 노스님의 모습에 철수했고 학병들은 무사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대구에서 왔다는 3명의 등산객을 하산 길에 만났다. 그중 한 명이 “나도 불자이지만 우리는 단순히 산이 좋아 등산을 왔을 뿐인데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하긴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수도사는 아예 들어가 보지도 않고 곧바로 산으로 올라가는데 따로 관람료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예 절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해서 절의 손님에 대해서만 받는다면 몰라도.수도사부터 산행을 시작한다면 진불암까지 성인 남자라면 1시간 정도, 어린이나 노인들을 동반한 경우라도 2시간이면 넉넉할 것으로 보였다. 등산의 계절 가을을 맞아 단풍이 물든 호젓한 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잘 오셨습니다. 반가운 분이여! 차나 한잔 하실까요 진불암 게시판에 써놓은 제목과 작가 미상인 한 편의 시에서 삶의 여유를 찾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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