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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설화·황보능장 기개 숨쉬는 천혜의 호국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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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유신랑은 그때 한창 고구려와 백제의 공벌 문제를 두고 밤낮으로 깊은 궁리를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백석이 그 계획을 알아차리고 유신랑에게 제의해 오기를, “공이 저와 함께 저쪽 적국에 잠입하여 먼저 적의 내정을 탐지하고 나서 일을 꾀하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했다. 유신도 그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백석을 데리고 밤을 타서 적국을 향해 출발했다. …중략… 유신랑은 여인들과 함께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수풀 속으로 들어가자 여인들은 별안간 신령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유신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내림·혈례·골화 이 세 곳의 호국 신이다. 지금 적국의 사람이 그대를 유인해 가는 데도 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따라가기에 우리들이 그대를 만류하고자 여기에 온 것이다.… 중략… 유신은 백석을 형벌하고, 갖은 제물을 갖추어 그에게 계시를 주었던 세 신령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 신령들은 모두 현신하여 제사를 받았다.… 후략] (삼국유사 ‘김유신 조’) [“신라 말 영남의 제주(諸州)가 견훤에게 함락될 때 황보능장이 골화·도동현 등에 성을 쌓고, 이 성에 의거하여 백성을 안심시키고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게 하였는데, 태조가 나라를 세우자 귀부(歸附)하였고 현재 성지가 남아있다고 한다”.(영양지 ‘성곽조’)]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조에는 황보능장과 같은 시기, 같은 장소인, 경애왕 2년 10월 고울부에 능문이라는 장군이 나오는데 활동시기·지역·내용을 함께 고려해 보면 능장과 능문은 동일인으로 여겨진다. 9월에 견훤이 이곳에 침입했을 때 약 2개월 간 견훤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을 정도로 성의 견강함과 높은 전투력을 자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천시민들의 산책로와 운동코스로 올해부터 각광받고 있는 그린환경센터. 이 일대가 바로 김유신과 백석의 설화와 함께 영천을 주재하던 골화신의 호국정신과 통일신라 패망기에 자치세력을 형성하여 주민들을 보호하던 금강장군 황보능장의 기개가 숨쉬던 곳임을 아는 시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영화교에서 금호강을 따라 그린환경센터로 가다보면 입구 왼쪽 편에 여러 가지 운동시설을 갖춰놓은 체육공원이 나온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도 무난히 금강산에 오를 수 있다. 비록 찾는 이가 많지 않아서인지 안내표지판 조차 하나 없지만 길을 걸으면서 맑은 바람소리와 새소리로 자연을 음미할 수 있고 또 옛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1천5백년 전에 그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보는 감회도 맛볼 수 있다. 지금도 900여m의 토석혼축 성벽과 성내에 깨어진 기와조각들이 남아 있어 당시의 웅장함을 짐작하게 한다고 전하지만 무성한 나무와 풀들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다만 지난 95년 3월 영천향토사연구회원들과 보이·걸스카우트 1270 B.B.S 골벌지역대원들이 사방 20여 리를 조망할 수 있는 정상부분(186m)에 세운 금강산성 표석비가 길손들을 안내하고 있다. 표석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황보능장이 타고 다니다가 주인의 실수로 목 베임을 당한 용마의 발자국이 찍힌 말굽바위가 길손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완산동 뒷산을 일컫는 금강산은 금강골로 불리고 있는데 지금도 대한불교 태고종인 금강사가 자리잡고 앉아 당시의 전통을 이어주고 있으며 고경면 대의동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절벽과 남천, 그리고 용마바위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특히, 단풍이 물든 가을과 봄, 겨울의 운치가 일품이다. 고려 태조로부터 좌승이라는 관직을 받았던 금강성주 황보능장의 묘는 3사관학교 내에 있으며 경북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직경 16m, 높이 5m의 원형분 앞에 상석과 향석을 두고 우측 전방에 신도비를 세웠으며 현존하는 신도비는 1947년에 건립한 것으로 조선 영조 43년(1767)에 세운 옛 비의 비문과 일치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3사관학교를 만들면서 당시 이곳에 있던 많은 묘를 이장하면서도 군인들의 귀감이 되는 황보 장군의 묘만은 그대로 두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의 중등학교 교사로 7여 년 간 근무하면서 고대사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던 중 지난 90년 8월, 향토문화연구회에서 발간한 향토문화 제5집에 ‘골화성에 대하여-골화소국과 관련하여-’란 논문을 발표했던 이재수씨(53·문학박사, 경북대 강사)는 “금강산은 신라삼산의 하나로 비정 되는 곳으로 안 완산동의 구릉지는 골화소국의 중심부이고 대사(大祀)를 올린 곳으로 생각된다”며 안 완산 철길 건너편 산의 북쪽 사면에는 20여기 이상의 규모가 큰 고분들이 무리 지어 고분군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이 발굴되면 골벌국의 실체를 밝혀줄 중요한 자료가 출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말 여초의 대표적인 호족인 황보능장을 통해 당시 호족들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이 일대에 산성공원과 옛길, 골화소국터, 고분공원 등 시민휴식공간과 역사교육 현장이 조성된다면 더없이 훌륭한 문화유적지이자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후 각 지역마다 그 지방을 아우를 수 있는 상징을 찾아 만드는 작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영천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정신적 지주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삼국통일을 이끈 김유신 장군을 구해주었고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크게 기여한 금강산성이야말로 ‘호국충절의 고장’ 영천의 정신을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모으고 발굴하여 영천의 중심부인 이 일대에 박물관을 지어 우리고장의 독특한 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일부 시민들만의 욕심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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