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답사와 여행이야기(이원석 편집위원)

[스크랩] 금호 신월, 봉죽리

이원석(문엄) 2007. 7. 15. 23:44

신월동 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 대표적 양식

 

 

 

예부터 일대에 대나무와 오동나무가 무성하고 예천수가 샘솟듯이 나오며 3년에 한 번씩 봉황이 모여들어 대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서식했다는 유봉산. 유봉산에서 남으로 뻗은 산맥이 낮아져서 구릉지를 형성하고 다시 낮아져서 평야를 이루어 넓은 들이 만들어졌다.

금호읍 신월리는 습지가 많은 평지가 아니고 구릉을 끼고 있는 마을이어서 인류가 정착하기에 편리한 곳이었다. 월하와 신흥 일부로 이루어진 마을로 월하리 고개마루에 사당이 있어 당(堂)고개라 하던 것이 이 고개를 넘어갈 때 땀을 많이 흘리는 고개라 하여 ‘땀고개’ 또는 ‘땅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을 싸고 있는 숲은 팔공산 도둑봉에서 보이지 않도록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만들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대나무는 없고 소나무만 있다.

이 소나무들의 수령은 100∼150년으로 곧은 것, 휘어지거나 처진 다양한 형태로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분재전시관을 연상시키고 있다. 금호읍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 받고 있는 이 소나무 숲은 경상북도로부터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지난 봄에 병해충이 발생해 정밀진단을 한 결과 소나무좀으로 판명되어 방제작업을 실시하고 있는 영천시에서는 매년 소나무 숲의 변화를 정밀 예찰해 기후, 병충해, 주변여건 변화 등 어떠한 조건에서도 장기적으로 보전될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드문드문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자리잡고 있는 탑 못은 신라시대 큰절이 있었던 자리라고 전하는데 궁예와 왕건이 싸우다가 왕건이 패해 팔공산으로 도망갈 때 사찰을 불태우고 말았다고 한다. 불상은 죽림사로 옮겼고 탑은 일제 때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절을 다시 지었다.불교문화유적의 큰 발자취인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숭배대상이 되어 왔으며 천년 성상의 모진 풍파에도 꼿꼿하게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사찰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경배대상이었다.

지난 68년 12월 19일 보물 제465호로 지정된 영천신월동삼층석탑은 탑이 세워질 당시 절의 이름이나 규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현재 신흥사 내에 자리잡고 있다. 높이 4.57m의 화강암 석탑인 이 탑은 기단을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기와집 모양의 탑신을 3층으로 쌓아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기단은 위 아래층 모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 부분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으며, 위층 기단 각 면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 8부중상이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모습으로 석탑에서는 주로 기단에 새긴다.

탑신에 모셔진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 돌과 지붕 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사용했으며 몸 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1층 몸 돌에는 4면 모두 문짝 모양의 조각을 새기고 각각 그 안에 자물쇠와 문고리 모양의 조각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모두 4단으로 새겼고 처마선은 수평을 이루나 두꺼워 보인다. 지붕돌 경사면의 네 귀퉁이는 이러한 두터운 지붕돌에 비해 아주 경쾌하게 위로 치켜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1층 몸돌이 큰 것에서 오는 불균형이 있고 각 4면에 모두 조각을 새겨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당시의 수법만은 잃지 않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곳은 신라시대의 신흥사지(新興寺址)라고 하나 부근에는 사지임을 증명할 만한 근거가 없다. 현재 탑 자체는 부분적인 손상을 입고 있으며 옥개받침의 감소, 초층 옥신의 과대, 과장식(過裝飾)이 있다. 옥신과 옥개는 각 일석으로 되어 있으며 각 옥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첫 층 옥신은 각면 중앙에 문짝과 문륜(門輪)이 모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원래 모두 잃어버렸는데 후대에 새로 만든 옥신석과 옥개석, 그리고 노반·보주 등이 얹혀 있어 현재는 4층탑을 이루고 있다.봉죽리는 곡촌, 죽방, 봉산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곡촌은 1720년대에 해주오씨가 개척했고 죽방은 김해김씨가 마을을 개척한 후 대나무를 많이 심어 온 마을이 대나무로 둘러싸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거여면이었을 때 새 동네가 이루어졌다고 하여 붙여졌다. 봉황, 죽림, 유봉, 봉산, 냉천 등은 모두 상서로운 새인 봉황과 관계 있는 곳으로 신월리의 유봉산과 연관이 있는 지역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인 죽림사는 신라 헌덕왕 1년(869)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그 후 중건하였으며 6·25사변 때 폐허가 되어 현재 건물은 그 후에 복원한 것이다. 극락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으며 극락전은 4칸 단층 팔작지붕이다. 또 건물 앞에는 조그마한 탑이 있는데 이 탑은 옛날에 해체된 탑재들을 주워 만든 것이다.

출처 : 영천뉴스24(yc24.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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