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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디앤무’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중·북부 지방에는 꽤 큰 피해를 입었다고 전해지지만 우리 지역에는 그다지 피해가 없어 보였다. 비 개인 들녘에는 생기 넘치는 농작물과 개울을 급하게 흐르는 물에는 힘이 넘치고 있었다. 대창면 용호리는 구룡산에서 북으로 뻗은 지맥이 다시 서쪽으로 연이어서 깊은 계곡을 감싸고,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연봉들이 영지사를 거쳐 서남쪽을 가로막아 마치 작은 한 분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유명한 도화못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마을은 각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방이 모두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춘하추동 주위의 자연환경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마을로 탑마을, 산잠동, 원촌, 송호, 용교가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85. 8. 5)된 도잠서원은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성리학의 대통을 이은 학자이며 선산부사를 지낸 지산 조호익을 배향하기 위해 공이 평소 기거하며 학문을 닦던 망회정 뒤에 묘우를 건립하여 지봉서원이라 하였다가 1653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숙종 4년(1678) 유생 정시간 등이 소를 올리자 나라에서는 도잠서원이란 편액을 내리고 이상제를 보내어 사제하였는데 사제문(賜祭文) 가운데 ‘우여심모’라는 글이 있었기에 병와 이형상이 사우를 성모묘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고종 4년(1868)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7년 망회정 뒤에 도잠서원을 중건하니 경내에는 정면 5칸,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진 강당과 그가 만년에 학문을 닦았다는 망회정 등 6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2동만 남아있으며 조호익의 신도비와 하마비가 있다. 신도비는 높이 2.67m, 폭 90㎝, 두께 21㎝이고 비각 정면과 측면이 1칸씩으로 되어있다. 구 서원 조금 위쪽에는 지난 95년 향내 유림들이 영천향교 명륜당에 모여 도잠서원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한 후 99년 12월 16일에 서원법규에 맞게 완공하고 2000년 음력 2월 하정일 춘향(春享)을 한 새 서원이 웅장한 모습으로 도화못을 굽어보며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지산 조호익(1545∼1609)은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연구, 명종 15년(1560) 생원·진사를 거쳐 문과에 합격했으나 선조 9년 경상도 도사(都事) 최황의 무고에 의해 평안남도 강동에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후진을 양성하여 관서부자(關西夫子)의 칭호가 특사(特賜)되었다. 부자라 함은 공자나 주자같이 덕행이 높아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배소에서 풀려나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군민을 규합, 중화·상원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녹비를 하사받았다. 그 후 성주목사를 거쳐 1595년 안주목사가 되고 이어 성천, 정주목사를 역임한 뒤 사직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강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 뒤에 선산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했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간, 저서로는 지산집, 가례고증, 주역석해 등이 있다. 산 쪽으로 좀 더 들어가다가 영지사 조금 못 미친 곳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많은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 소리가 마치 폭포수처럼 장엄하게 들려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쥐라기 말기와 백악기 초기의 암석에서 화석으로 발견되는 이구아노돈(Iguanodon) 계통의 공룡으로 현재 12개의 발자국이 나타나 있다. 이구아노돈은 대형 초식성 공룡의 한 속(屬)으로 유럽·북아프리카·동아시아 등에 걸쳐 나타난다. 몸길이는 10m 이상 되었으며, 땅에 서 머리까지 높이는 4m였다. 두발로 걷는 이 동물은 뒷다리가 매우 발달했으며, 길고 육중한 꼬리로 몸의 균형을 유지했다. 앞다리도 비교적 잘 발달했는데 여기에는 날카로운 송곳과 같은 휘지 않는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들과 수직을 이루는 독특한 손이 달려 있다. 여러 마리의 화석이 무리로 발견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떼를 지어 돌아다녔으며 부분적으로 수중생활도 하여 위협을 받으면 냇가나 호수로 피한 것 같다. 천년고찰 영지사는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하여 웅정암이라 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에 지산조사가 중수하여 영지사라고 했다. 사찰입구에는 임자갑유공비(壬子甲有功碑)가 있어 조선 영조 50년(1774)에 중수한 것을 알 수 있으며, 구룡산과 오지산 십이봉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유서 깊은 전통사찰로 경내에는 팔작지붕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범종각, 명부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입구에는 역대 주지스님들의 부도가 있다.
자연 장대석을 허튼층 쌓기로 기단을 축조하고, 자연석을 주석초로 틀고 둥근 기둥을 사용한 대웅전은 둥근 기둥 상부에 외부의 2출목과 내부의 3출목의 4제공 갖은 삼포형식이다. 마루는 우물마루를 놓았으며 불단 상부의 천장부분은 용화반자를, 그 외 부분은 우물반자에 단청이 되어있다. 정면 중안 칸 문에는 꽃살문을, 정면외측과 측면에는 교살문을 달았고 건물 귀에는 서까래 잡이 기둥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범종각은 자연석의 덥범추석에 둥근 기둥을 한 겹처마 초익공계의 5량가구식 건물로 마루는 우물마루를 틀고 사방으로 계자난간을 설치했다.또 심검당으로 불리는 요사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박공·합각지붕의 복합형태 건물로 막돌 허튼층 쌓기 기단위에 덤벙초석을 다듬어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창방 상부에 소로가 받혀 있고 정면과 배면 3칸에 반칸 규모의 동마루가 놓여 있으며 안쪽에는 온돌방으로 칸마다 여닫이문이 달린 것을 미닫이문으로 교체해 놓았다. 8개월 째 영지사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한 보살은 “천년고찰을 구경하기 위해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이곳은 공기가 맑고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정신수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고 절을 소개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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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과 범종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7호(88. 9. 23)로 지정되었고 법당 앞의 삼층석탑은 탑마을에 세워졌던 것으로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무너진 것을 대창지서에서 임시 보관하다가 영지사에 이건한 것으로, 탑의 기단은 용호리 탑마을에 있고 이곳에는 초층(初層) 옥신 이하와 상륜부가 전실된 1.6m 높이의 탑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