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자료/영천 지명유래 및 마을변천사

46. 어은리(魚隱里)

이원석(문엄) 2011. 11. 13. 09:00

1) 마을의 자연환경

금호강변에 있다. 동으로 채약산(採藥山)과 금오산(金鰲山)이 바라보이며 서북으로는 팔공산의 영봉들이 연이어진 것들을 볼 수 있다. 남으로는 금박산(金迫山)이 저 멀리 높이 솟아있다.

2) 마을의 역사

▶ 어은ㆍ어븐ㆍ어은(魚隱) 마을 앞에 있는 조그만 냇물에 고기가 잘 번식하여 불리어진 이름이며 예로부터 고기가 놀란다고 하여 농악놀이를 하지 않고 있다. 이 마을에는 대문을 달면 도둑을 맞는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대문을 달지 않고 있다.

약 320여 년 전 전 성균관 생원 서열(徐悅)이 마을을 건립하며 도장곡(道藏谷)이라 했으나 그 후 마을 밑에 있는 큰 소(沼)에 ‘이심이’가 살고 있기에 어은이라 했다.

▶ 새마실 1959년 사라호 태풍 후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 염정(廉政)골 고려시대(?)에 염정승(廉政承)의 묘가 이곳에 있었다 하여 염정골이라 불렀다는 골짜기가 있다.

▶ 자라봉 산맥의 형태가 자라와 같이 생겼다하여 자라봉이라 칭했다 한다.

3) 마을의 특징

- 이심이 웅덩이 전설 : 미꾸라지가 용이 되려다가 어떤 저주에 의해 못되고 물속에 산다는 전설적인 큰 구렁이인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천년을 더 묵어야 용이 될 기회를 얻는다고 한다. 이 구렁이가 이 소에 살고 있어 농악이 울리면 고기뿐만이 아니라 이놈이 성을 내게 돼 마을 전체가 해롭다고 전해오고 있다. 옛날 이 소는 명주실 한 타래만큼 깊었다고 한다.

- 보본재(報本齋) : 성균관 진사를 역임한 서열 선생의 재사

- 거연정(居然亭) : 조선 고종 때 덕망이 높아 장릉참봉(章陵參奉)을 역임한 조병문(曺秉文) 선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아들 성균순사(成均巡사) 석환(奭煥)이 건립한 정자

- 어은리 청동유적지 : 어은리 입구 금호강변에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어 우리나라 청동문화의 유적지로 유명하다. 불행하게도 이 유물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손으로 발굴되었기 때문에 당시 그들의 손에 의하여 일본으로 반출되고 다만 세형동검(細形銅劍), 호형장구(虎形帳鉤) 등 몇 점의 유물만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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