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의 자연환경
동쪽에 있는 채약산에서 뻗은 지맥이 갑자기 낮아져서 구릉지를 형성하고 다시 평지가 되었으며 서쪽은 구릉지를 넘어서 금호강이 서북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남은 높은 봉들이 연이어져서 대창면과 경계하고 있다. 서쪽은 금호평야가 전개되어 있고 저 멀리 팔공산의 연봉들이 높이 솟아있다.
2) 마을의 역사
▶ 호남(湖南)ㆍ신전(薪田) 옛날 이 지역은 나무가 우거지고 밭이 많아서 신전(薪田)이라고 불리어졌는데 약 370여 년 전 염씨(廉氏)가 개척했으며 전쟁 시에는 피난처로 알려졌다. 임진왜란 때 잔인한 왜군의 해를 피하기 위하여 당시 영천군수가 이곳에 많은 군민을 피난시켜 화를 면하게 했으며 6ㆍ25사변 때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는 칠백면(七百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병합으로 금호읍에 편입될 때 금호읍의 남쪽에 위치하여 있으므로 호남으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신전(新田)에는 옛날에 군량미 창고가 있었기에 사창이라고도 한다. 지금 그곳에 느티나무가 서있다. 입구에 있는 산에 옛날마을의 행운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냈다. 신전에는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처음 살았으나 지금은 한 가구도 없으며 파평윤씨, 경주김씨, 경주최씨, 창녕최씨 등이 살고 있다.
▶ 신촌(新村) 아래에 있는 새로 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임란 후에 김녕김씨(金寧金氏) 형제가 와서 처음 살았으나 지금은 그 후손이 한 가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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