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水 1
정지용 (1902~1950)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그리움은 흑백이다.
정지용 시인이 누구인가? 월북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그래서 오랫동안 주옥같은 그의 작품들이 빛을 보지 못했었지. 다행히 1988년 해금 이후로는 그 어떤 시인의 작품보다도 광영을 누렸었지. 그대들도 익히 알고 있듯이 노래로 불리어진 향수를 비롯하여, ‘유리창’, ‘백록담’, ‘비’ 등등의 시가 널리 알려졌지.
오늘은 시인의 湖水 1에 폭 빠져보기로 한다. 유년시절에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먼저 보았던 ‘호수’라는 시. 세일러복을 입었던 여고생의 그리움에 젖은 먹머루빛 눈동자와 호수의 파문이 클로즈 업 되어 있었던 카드. 그리고 몇 줄의 글이 있었는데 아주 인상적이어서 외워두었었는데 훗날 배후가 밝혀졌다. 정지용이었다. 그의 품에서 빠져나온 ‘호수’였던 것이다.
(‘얼굴 하나야 /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 싶은 마음 / 호수만 하니 / 눈 감을 밖에’)로 그려지는 이 짧은 한 편의 시. 말이 짧다고 그리움마저 얕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한데, 눈 뜨고는 견딜 수 없는 노릇이니 눈을 감겠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첨단 컬러동영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오히려 그것들은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한다. 그리움은 흑백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대의 눈을 감는 가장 재래적인 방법보다 나은 것은 단언컨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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