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시와 연애를 하자(장병훈 편집위원)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이원석(문엄) 2009. 8. 16. 21:40

비 가는 소리

                                 유안진(1941~)

비 가는 소리에 잠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 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죄다.



밤비 가는 소리, 알아차렸을까?

밤비니까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한다. 오는 줄도 몰랐던 밤비. 갈 때야 겨우 알아차린다. 하긴 우리가 언제 알고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그래서 우두커니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오지 않는다. 한 번 가버리면 오지 않는다. 그대의 젊음이여, 그대의 사랑이여, 그대 앞의 기회들이여! 지나간 뒤에 죄악을 저질렀다고 후회하지 말 것이다. 물론,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뜻대로 된다면 그건 인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전해보라, 마음대로 안 풀리다가도 어느 순간 술술 풀리는 것 또한 인생의 묘미일 것이니.

 

 

   
▲ 시인 장병훈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