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여러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 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밤,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 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삼켜야 하느냐, 토해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는 일이 그렇네. 토하고 싶은 것을 참다보니, 삼킴 장애도 생겨나는 일이겠지. 삼킴과 토함을 잘 분별해내는 일이 또 우리에게 부과된 삶의 숙제이겠지.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미있네.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미선.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삶이 그렇다. 삼켜야 하느냐, 토해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삼키면 내가 괴롭고, 그렇다고 토해낸다고 내가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 그래도 가끔 삼킬 수 없는 것은 거칠게 한 번 토해볼까? 세상이 만만찮으니 어설프게 토하면 되레 당하고 말테니 작심하고 걸게 토해야겠지.
▲ 시인 장병훈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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