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시와 연애를 하자(장병훈 편집위원)

깃발 - 유치환

이원석(문엄) 2009. 9. 14. 09:39

장병훈 편집위원 siijang@hanmail.net

            깃발

                      유치환(1908~1967)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도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아, 내 안에서 나부끼는 깃발이여!

내 몸 속에는 언제나 ‘소리없는 아우성’이 살고 있다. 나만의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한 장, 맨몸에 걸어놓고 살고 있는 것이다.

아아, 나는 날마다 바다를 향한다. 찢어질 듯 손수건 펄럭이며 내 마음을 공중에 매달아놓았다. 아, 바람이 분다. 내 작은 몸은 팽팽하게 찢어질 듯 휘날린다. 이보다 더 눈부신 순정을 보았는가? 백로처럼 날개를 편 애수의 눈물 한 방울을 보았는가?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매달린 내 영혼의 조각들이여! 슬프다. 도달할 수 없는 그 마음들이여. 그러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이 아닌 것을. 하지만 기뻐하라. 내 작은 온몸이 깃발이 되어 나부끼며 살아가는 그 맹렬함을!

 

   
▲ 시인 장병훈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