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시와 연애를 하자(장병훈 편집위원)

개안(開眼) - 박목월

이원석(문엄) 2009. 3. 30. 10:48

개안 (開眼)   

                   박목월

나이 60에 겨우
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神이 지으신 오묘한
그것을 그것으로
볼 수 있는
흐리지 않은 눈
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채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꽃
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충만하고 풍부하다.
神이 지으신
있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至福한 눈
이제 내가
무엇을 노래하랴.
神의 옆자리로 살며시
다가가
아름답습니다.
감탄할 뿐
神이 빚은 술잔에
축배의 술을 따를 뿐.

 

 

‘한 편의 시를 낭송하는 봄밤이 되게 하소서’

지난 주말(3월 28일, 토)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서 박목월 詩읽기가 열렸다. 전국적인 물결을 타고 있는 <책, 함께 읽자>의 명제 아래 목월선생 서거 31주년 기념으로 시 낭독회가 개최된 것이다. 목련꽃이 피어있는 문학관에서 목월의 제자들이 시를 읽고, 시노래를 부르며 봄밤의 흥취를 돋구었다. 그리고 문학 외적인 일에 종사하며 생전 처음으로 시를 낭독해본다는 각계 각층의 수줍은 목소리들도 함께 하여 시읽기 행사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했다.

필자도 그 날, 문학관 마당의 꽃나무 아래를 거닐며 향토가 낳은 한국문학의 대들보 목월선생의 시편들을 읊조려 보았다. ‘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를 소망하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외로운 봄밤을 달래주었다. 삶이라는 것이 때론 미혹(迷惑)에 빠져 ‘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세상을 채색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충만하고 풍부’한데 우리의 눈이 열리지 않은 탓으로, 세상이 구겨보이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시를 읽어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릴까? 그리고 꽃이 꽃으로 보일까? 꽃 피는 봄날에는 한 편의 시를 읽어보자. 꽃 지는 봄날에도 한 편의 시를 읽어보자.

   
▲ 장병훈 편집위원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