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엄원태
백합조개는 사라진 지 오래
가무락이나 바지락은 그나마
뻘길 십 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물 들어오기 전
개흙십리
발목까지 꼬박꼬박 빠지며 돌아오는
아낙이며 사내들은 망태를 이거나 졌는데
발목 빠진 자국들, 오롯이
가늘고 긴 생의 외통길을 이루었다
방죽 오르는 허리 굽은 한 할미,
"휘이유, 워메 징한 거, 참말로 팍 죽는 거시 더 낫것어야"
휘파람 섞인 탄식을 내뱉는데,
삭신 녹아내리는 그 한마디만한
뼈마디 저린 절창을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다
새만금 갯벌은 지척이 십리지만
발로 걸어보지 않으면 다 헛것이다
찔걱거리는 뻘에 발목 잡혀보지 않고서는
목숨 얼마나 질 긴 줄 알 길 없다
우리네 삶의 절창을 어디에 가서 찾을까?
봄날 정신이 산란해져 오는 것은 꽃의 화려함만 보기 때문이다. 꽃은 절경이 될 수 있으나 절창은 될 수 없다. 꽃 피우기 위해서 안간 힘을 쏟던 온갖 염병들이 바로 절창인 것이다. 그런 것이다.
꽃대를 밀어올리기 위해서 꽃나무들은 얼마나 자폐를 앓았을까? 그 보이지 않는 삭신의 녹아내림이 바로 시인 것이다. 어리석은 시인들이여, 꽃만 보고 시를 죽자고 쓰려 했으니 시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한심한 시인들이여, 꽃만 보고 눈물짓고 있으니 이웃들의 가슴을 적시는 시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휘이유, 워메 징한 거, 참말로 팍 죽는 거시 더 낫것어야” 라고 휘파람 섞인 탄식을 내뱉는, 방죽 오르는 허리 굽은 한 할미의 독백이 있다. 시인은 삭신 녹아내리는 그 한 마디만한 뼈마디 저린 절창을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놓치지 않았구나, 시인의 위대한 가슴이여!
'찔걱거리는 뻘에 발목 잡혀보지 않고서는/ 목숨 얼마나 질긴 지 알 수 없다'라고 했지. 그래, 절경은 시가 될 수 없지. 그래서 꽃이 시가 될 수 없었구나. 꽃의 진리는 저 꽃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자. 아, 꽃을 피우기 위해서 끝끝내 질긴 목숨 놓지 않았던 그 무수한 탄식이 바로 절창의 시 한 편이란 것을, 분명히 바로 알자.
| |
|
 |
|
▲ 장병훈 편집위원 |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