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시와 연애를 하자(장병훈 편집위원)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이원석(문엄) 2009. 3. 9. 10:13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래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뚝뚝 떨어진다
눈덩이 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울 엄니도 여즉 꽃무늬 팬티를 입고 계실까?

어, 이상하다. 울 엄니 꽃팬티의 꽃잎들이 나무에 걸리기 시작했다. 아즉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들이 허공을 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끝이 뾰족한 노란 우산을 펼쳐든 산수유 꽃잎도, 빠알갛게, 파아랗게, 혹은 새하얗게 점점이 수놓은 매화이파리들도 다아 어머니의 서랍 속에 들어있던 꽃팬티들의 꽃들 아닌가?

아니, 조 이쁜 것들이 아직 꽃샘 추위가 남아있는데도 우수, 경칩 지났다고 성질 급하게 외출을 나오셨단 말인가? 어머니도 봄처녀가 되어 전격적으로 외출을 감행하고 싶었단 말씀이겠다. 그럼, 저 나무에 매달린 하늘하늘거리는 꽃잎들은 어머니 꽃팬티 속에서 뛰쳐나온 것이란 뜻이겠지요. 바꾸어 말하면, 어머니의 여자들이 나뭇가지 끝에 나부끼기 시작했다는 의미인가요?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된 팬티 한 장’ 지금, 뱃가죽이 늘어진 어머니가 꽃무늬 팬티를 입고 하루를 시작할 지 모르신다. 그 꽃무늬는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다는, 시인의 나지막한 육성이 귓전을 울린다.

   
▲ 장병훈 편집위원(시인)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