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답사와 여행이야기(이원석 편집위원)

영천향토사연구회 북안 서당‧옥천리 미륵불 답사

이원석(문엄) 2007. 11. 2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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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구제할 미래의 부처 미륵불’

영천향토사연구회 북안 서당‧옥천리 미륵불 답사
2007년 11월 24일 (토) 18:50:54 이원석 기자 ycnews24@hanmail.net

영천향토사연구회(회장 이임괄)에서는 24일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 미륵불을 찾아 북안면 서당리와 옥천리를 답사했다.

   
  ▲ 미륵불 부부.왼쪽이 할매불이고 오른쪽이 할배불이다.
 
먼저 방문한 곳은 서당리 맹자골. 북안에서 명주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서당리 팻말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1㎞쯤 가면 왼쪽으로 통수사 0.9㎞ 안내판이 나온다.

지금은 닫혀있는 통수사 조금위에 컨테이너로 지은 집이 한 채 보인다. 집 건너편에는 김순희(73)씨가 두기의 미륵불에게 지극정성으로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 산신각
 
왼쪽에는 조립식으로 자그맣게 지은 산신각이 있고 미륵불 앞에는 항아리, 화분과 정성껏 차려놓은 과일이, 뒤쪽에는 여러 개의 큰 바위가 찬바람을 막아주었다.

김씨가 남편 박근수(78)씨, 아들(46)과 함께 이 마을로 들어온 것은 지난 2002년. 이곳에서 자라 50여 년간 부산에서 쌀장사와 목욕탕을 하며 살던 이들 부부에게는 근심이 하나 있었다.

   
 
마음의 병을 가진 아들로 좋다는 약을 써보고,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녀 봤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부턴가 김씨의 꿈에 미륵불이 여러 차례 나타나 쉬는 날 혼자서 이곳으로 찾아와 헤매던 중 현재 축대를 쌓은 부분에서 머리가 없이 쓰러져 있는 할매불을 발견했다.

며칠 후에 금오산 아래 산고랑에서 역시 목이 달아난 채 뒹굴고 있는 할배불을 찾은 후 경주 아화의 석공집에서 머리를 새로 만들어 붙이고 파손된 부분을 보수했다.

   
  ▲ 미륵불과 꿈을 통해 대화를 하고 있다는 김순희씨
 
처음에는 슬레이트로 미륵불의 집을 지었으나 미륵불은 허공에 모셔야 된다는 동네사람들의 말에 집을 철거하고 대신 왼쪽에 산신각을 지었으며 청송산에서 큰 돌들을 사와 단 받침과 부처 뒤에 세워두었다.

발견당시부터 있었다는 왼쪽 할매불의 다리와 옆에 놓여 있는 돌 두개는 돌할매처럼 지극정성으로 빈 뒤 들어보면 소원이 이루어지면 안 들리고 소원이 안 이루어지면 들린다고 했다.

   
  ▲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고난 뒤 들면 이루어질지 여부를 알려준다는 돌. 발견당시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맨 처음 이곳을 찾아올 때처럼 미륵불과 김씨 사이의 대화는 꿈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왜 결혼식 안올려주느냐?”고 해서 사월초파일날 사모관대 사서 혼례식을 했고 도랑물을 2년간 사용하다가 너무 힘들어 부산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이곳에 지하수 파면 물 나온다.”고 알려져 식수도 확보했다.

며칠 전에는 남편이 경운기를 끌고 무를 뽑으러 가려고 해 미륵불에게 들은 대로 가지 말라고 알려주어도 고집을 부리며 기어코 가더니 경운기 전복으로 갈비뼈를 다쳐 병원에 다니고 있다며 속상해했다.

   
  ▲ 미륵불 조금위에 있는 밭 가운데에 고인돌로 보이는 돌무덤이 있다.
 
이름도 애초에는 미륵종불로 불렀는데 미륵불로 불러달라고 했고 김씨의 몸이 좋지 않을 때면 미륵불의 색깔이 빨간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미륵불 부부가 김씨에게 말했다는 소원은 “세계 각국에 내 이름을 내어달라”였다고.

김씨의 작은 소원은 ‘아침마당’같은 프로에 출연해서 ‘부처를 지극정성으로 믿으면 세상일이 술술 풀리고 아무리 중한 병이라도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 육화사 미륵불(오른쪽)
 
집 위쪽의 밭 가운데에는 고인돌로 보이는 무덤 같은 것이 보였다. 밭을 개간하면서 굴러 내려왔을 수도 있고 여기저기에 모인 돌들을 모아 놓았을 가능성도 있어보였지만 속을 파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천향토사연구회 이광수(경대사대부고 교사) 회원은 “저 정도 미륵불이 있었다면 이 일대에는 오래 전에 절이나 암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 육화사 미륵불(왼쪽)
 
맹자골에서 국도로 나온 뒤 500여m 정도 올라가면 육화사(六和寺)를 안내하는 팻말이 나온다. 이곳에서 1㎞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끝 지점에 천년석불기도도량 육화사가 산뜻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불교단체총연합회 한국불교사회연구소로 안, 이, 비, 설, 신, 의 육근(六根)을 강조하는 이 절은 해동불교대학 남동분교이기도 하다.

   
 
최근에 새로 지은 이절 법당 안에는 미륵불 두 기가 양쪽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다.

주지인 무통스님이 출타중이라 자세한 유래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 천년석불기도도량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북안면 옥천리의 천년석불기도도량 육화사
 
이재수 박사는 “이 미륵불들은 상호도 좋고 수인 등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으로도 꽤 가치가 있어 보인다.”며 “발견한 곳에는 큰 가람과 탑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천향토사연구회원들은 이날 본 미륵불의 사진을 전문가에게 보여 자문을 구하기로 하고 기념촬영을 한 뒤 육화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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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상에 관해서 잘 아시는 분 조언 부탁드립니다.

 

   
  ▲ 맹자골 미륵불
 
   
  ▲ 맹자골 할매불 뒷모습
 
   
  ▲ 육화사 미륵불1
 
   
  ▲ 육화사 미륵불1 수인
 
   
  ▲ 육화사 미륵불1 옆모습
 
   
  ▲ 육화사 미륵불2
 
   
  ▲ 육화사 미륵불2 뒷모습
 
   
  ▲ 육화사 미륵불2 옆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