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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오늘은 화남면 대천2리의 안쪽마을인 강당에서 친목회가 열리는 날이다. 경주 이씨들의 집성촌인 이 마을에서는 2년마다 한번 씩 친목회가 열리고 있는데 어느덧 8회째를 맞았다. 주5일 근무제의 영향 탓인지 가까운 대구, 경북에서부터 멀리는 서울, 부산, 강원도, 충청도 등지의 친족들도 일찌감치 모여들기 시작했다. 물보다 진한 피가 흐르는 혈육으로 맺어진 일가친척들은 누구보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여 그간의 안부를 물으면서 정을 나누었고 고향을 지키는 유사댁들은 논실댁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고향을 찾은 귀한 손님들을 환대했다.
보현산에서 시작한 산맥들이 서남간으로 힘차게 뻗어오던 중 작은 산맥들이 끝이 나는 곳에 넓은 언덕을 이루고, 화산의 산맥들이 동남으로 내려오는 작은 연봉들이 이어오는 사이에 넓은 들이 생겼으며 흐르는 시냇물은 마을 앞을 감돌아 굽이쳐 흐르고 서남쪽은 들을 지나서 저 멀리 천길 높은 절벽이 약 100여m 연결되어 있다. 그 아래의 강에는 낮에도 밤에도 어두침침한 소가 있으니 이곳이 바로 양강소이다. 깎아 세운 듯한 벽과 깊은 소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마치 선경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장엄한 절벽의 모습이 인간을 내려다보며 마치 큰 주먹으로 내려칠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비로운 눈으로 사람을 유인하는 듯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예부터 양강소는 경치가 극히 좋아 음력 5월5일 단오 날에는 인근마을사람들도 함께 모여 놀던 곳이다.조선명종 때 양강소 절벽 위에는 백학서원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곳에는 지금도 묵은 기와조각들이 보이며 그 두께가 7㎝정도 되는 것도 있어 당시 백학서원의 웅장함을 짐작할 수가 있다. 또한 뒤에는 산이 도사리고 있고 앞에는 험한 절벽이 가로놓여 있는 이곳은 요새지로도 매우 적합한 곳으로 전해오는데 옛날에는 화주고을을 지키는 군인들의 집결지였다고 한다. 강당은 경주이씨가 정착하여 조선조 중엽에 학천서당을 건립하여 지방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나주정씨의 세거지인 대리는 정윤성이란 선비가 약 400여년 전에 처음 개척하여 생천이라 해오다가 정씨 조상이 중국에서 왔기에 대리라고 했다. 창녕성씨의 세거지인 생천은 한내라 했으며 약400여 년 전 성송국이라는 선비가 처음 정착했다. 앞내의 물이 맑고 차가와 생천이라 칭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리의 대자와 생천의 천자를 따서 대천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성덕룡은 조선선조 때 신녕현감 황준량과 함께 백학서당을 짓는데 공이 많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들 성훈, 성적을 사위인 권응수 장군의 진중에 보내 많은 공을 세우도록 했으며 이들의 공로로 뒤에 예조참의가 되었다. 향내 선비들이 대천서당에 봉향케 하고 정자는 1919년에 세웠다.대천에는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성송국, 판서를 지낸 성기와 성덕룡을 봉향하고 있는 대천서원과 성덕룡의 정자인 망학정 그리고 강당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학천서당이 있다. 학천서당은 원래 임진란 때 의병으로 출전하여 선무원종 2등의 공훈으로 훈련원정의 벼슬에 오른 가은 이온수장군의 서원이었으나 나중에 훼철되어 서당이 되었다. 이온수장군은 어릴 적부터 남달리 뛰어난 점이 있었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여묘3년을 마쳤다. 어머니가 왜병에게 살해당하자 충의공 권응수장군의 의진에 참가, 왜적을 무찌르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마을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면 노방(사천2리)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이곳은 6·25때 인민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자리로 14일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고 전한다. 동네 어느 곳에서든지 양강소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대천마을은 마을안길 복개도로가 개설되면서 한층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새롭게 조성한 마을회관과 그네, 벤치 등을 마련한 입구의 마을쉼터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휴식도 함께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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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기념식에서 순국선열과 조상께 드리는 묵념순서가 한 조상의 핏줄임을 강조했고 남녀노소가 함께 풍물놀이를 펼치면서 격조했던 시간의 벽을 허물어뜨렸다.강당친목회 이동호 회장은 “한 방울의 빗물이 모여서 넓은 바다를 이루듯이 회원들의 지대한 관심과 협조가 고향발전의 밑거름이 된다”며 “각지에서 일가를 이룬 200여 가구의 친족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