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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푸른 하늘을 자랑하던 지난 16일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에 위치한 국립영천호국원을 찾았다. 입구에는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꽃을 팔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을 바라보며 경내로 들어가니 장례객들과 함께 휴일을 맞아 포스코 등에서 단체로 참배를 하러 온 인파들로 붐볐다.
납골당인 충렬관과 전투장비전시관을 지나니 거대한 영천대첩비가 위용을 드러냈다. 이 비는 6ㆍ25전쟁 중 대한민국의 운명을 건 최후의 보루인 영천대회전에서 북한공산군의 남침을 저지, 섬멸함으로써 조국의 자유를 지켜낸 영천대첩을 기념하고, 보병 제8사단을 주축으로 한 참전장병들의 전공을 높이 현창함과 동시에 전우들이 남긴 뜻이 국가안보의 영원한 귀감이 되도록 하고자 하며 이 전투에서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공훈을 청사에 길이 빛내기 위해 2002년 5월 27일에 건립한 것이다.
1950년 불의에 무력남침을 감행한 북한공산군에 전력적으로 열세였던 아군은 속수무책으로 치열한 지연전을 거듭하면서 밀리고 밀려서 낙동강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아군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국운이 걸린 최후의 보루였다.
전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던 중 다부동 방면 돌파에 실패한 공산군은 화급히 공격방향을 영천으로 바꿨다. 영천은 낙동강방어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만일 영천이 함락되면 경주, 부산마저 상실되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고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영천대회전은 제8사단이 주축이 되어 제7사단 2개연대와 제1사단 11연대 및 제6사단 19연대가 이 작전에 투입되어 1950년 9월 4일부터 13일까지 10일간의 필사적인 공방전 끝에 영천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영천대첩은 결과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했으며, 반격북진의 첫발을 내딛게 했다. 영천대회전은 국가의 운명을 건 결전이자 자유를 지켜낸 일전이었다.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의 나라를 구했던 영천대첩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13일 제8사단과 영천시 주최로 이 대첩비 앞에서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고구려 첩자 백석의 꾐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김유신을 구한 신라호국 삼신의 이야기에서부터 고려시대 활약한 최무선 장군과 포은 정몽주 선생, 임진왜란이나 한말 등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선 의병장들, 여기에 최후의 방어선인 영천에서의 대승으로 이틀 후인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했던 영천대첩까지…. 호국의 고장에서 살고 있다는 영천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해 보였다.
<글 영천뉴스24 이원석 기자, 사진 향우신문 최기훈 기자>
* 향우신문과 영천뉴스24의 공동 취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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