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유적 간직한 역사ㆍ교역 중심지 시모노세키 | ||||||||||||||||||||||||||||||||||||||||||||||||||||||||||||||||||||||||||||||||||||||||||||||||||||||||||||||||||||||||||||||||||||||||||||||||||||||||||||||||||||||||||||||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 아카마신궁, 일청강화기념관, 쵸후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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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혼슈와 큐슈를 잇고 있는 인구 28만명의 시모노세키(下關)는 야마구치(山口)현의 역사와 교역 중심지로서 자리잡고 있다.
관문해협을 면하는 혼슈 최서단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한국(부산), 중국(청도ㆍ소주)과 국제항로로 연결돼 왕성한 교류가 펼쳐진다. ‘블루라인’이라 불려지는 아름다운 해안선, 명문 골프장, 개성 넘치는 온천도 매력적이다.
키타큐슈시(北九州市)와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해저터널로 연결돼 있으며 복어요리나 성게로 대표되는 해산물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1895년 4월 17일 일본제국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의 이홍장 사이에서 청일전쟁의 강화회의로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이 체결돼 5개 항목으로 청나라의 조선간섭을 물리치고 일본이 조선과 만주까지 지배력을 뻗치게 된 아픔을 안겨줬으며 조선통신사가 에도를 방문할 때 머문 곳으로 조선통신사의 객사로 사용됐던 아카마신궁과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 유적이 있다.
영천향토사연구회에서 고대로부터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전통과 현대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시모노세키를 방문했다.
입국수속을 마친 후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니 영천시한일문화교류회와 친분이 있었던 시모노세키시(下關市) 일한친선협회(日韓親善協會)에서 6명의 회원들이 나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환영했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자세하게 안내를 해줘 8시간의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유익한 일정을 보낼 수 있었다.
먼저, 세월의 정취가 쌓인 거리에서 일본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쵸후(長府)마을을 방문했다.
에도시대 쵸후 모리번은 봉녹 5만석의 성곽마을로 번성해 유신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한다. 이 산책코스는 도보로 약 40분정도 걸린다. 무사저택과 토담, 독특한 구조의 골목 등 에도시대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
쵸후정원은 쵸후 모리번<번(藩) : 옛 일본 지방 호족의 영지>의 최고 가신인 니시유키나가의 저택 터이다. 작은 산을 배후로 약 3만㎡의 부지에는 연못을 중심으로 서원, 다실, 실개천을 만들어 사계절 변하는 자연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꾸며진 회유식 정원이다.
또 쵸후 모리저택은 1903년 당시 시모노세키를 다스리던 쵸후 모리가의 14대손 모토토시공에 의해 세워진 저택이다. 메이지 천황이 숙박한 방도 보존되고 있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일본식 정원은 사계절 신록과 단풍을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쵸후마을을 나와서 혼슈와 큐슈를 잇는 대교로 전장 1,068m, 해면에서의 높이 약 61m. 때때로 시속 10노트(시속 18km)를 넘는 다이내믹한 해류는 시모노세키의 심볼인 칸몬교 아래 칸몬터널 인도로 이동했다.
혼슈와 큐슈를 잇는 보행자용 해저터널로 시모노세키와 모지 사이가 전장 3,461.4m(인도부분 780m)의 해저 터널로 연결돼 있는 세계적으로 진귀한 터널이다.
점심은 가라토 시장에서 먹기로 했다. 싱싱한 생선을 중심으로 수산도시 시모노세키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즐거운 쇼핑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금ㆍ토ㆍ일요일에만 개장하는 이 시장에서 칸몬해협을 왕래하는 배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 후에 가라토 시장 가까이에 있는 아카마진구(赤間神宮)로 이동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820년전 일본을 지배하고 있던 두 세력인 헤이케와 겐지가 패권을 둘러싸고 이곳 칸몬해협에서 최후의 결투를 펼쳤다. 이 결투에서 패한 헤이케 최후의 황제인 안토쿠 천황을 모신 신궁이다. 아카마 신궁에서는 그 당시를 기리며 ‘센테이사이’라는 축제를 열고 있다.
1185년에 건립한 신궁으로 같은 해 여덟 살 나이로 죽은 안토쿠[安德王, 재위 1180∼1185]왕을 모셨다. 안토쿠왕은 헤이안시대의 무장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의 외손자로, 무사집단 겐지[源氏]와 헤이시[平氏]가 최후의 전투를 벌인 단노우라[檀ノ浦]에서 헤이시 일파가 패하자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매년 5월 안토쿠 왕을 기리는 센테이사이[先帝祭]가 열리며 통신사가 상륙한 부두에 위치한 아카마신궁<당시는 아미타사(阿彌陀寺)>은 접대소 또는 정사 (正使)의 숙박소 역할을 했다.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는 1607년 일본에 많은 문물을 전한 조선통신사가 시모노세키(당시의 지명-아카마가세키)에 상륙한 것을 기념해 당시 실제로 상륙한 부두가 있었던 곳에 건립됐다.
아카마가세키는 통신사 일행의 일본 본토 최초의 상륙지였으며 1607년의 제1회로부터 1764년의 제11회(마지막이었던 제12회 째는 쓰시마까지로 본토 미상륙)까지 항상 방문했으며 귀로에도 들렀던 주요한 경유지였다.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에서 조선통신사와 포은 정몽주 선생에 대한 설명을 했더니 일본인들이 많이 놀랐나보다. 시모노세키항에서 세노오 하쯔미씨가 “한국사람이 역사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데에 감명받았다.”면서 명함을 건네주면서 자기 전화번호를 꼭 스마폰에 입력해서 함께 카카오톡을 하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답사한 곳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일청강화기념관(日淸講和記念館). 이곳은 일청강화조약이 체결된 곳으로 우리가 시모노세키조약이라 부르는 바로 그 조약이다. 청의 대표 이홍장이 이곳에 와서 치욕적인 서명을 하고 갔으며 당시 일본인 자객이 그를 습격하고 찔러 중상을 입혔고 바로 처형됐다고 한다.
시모노세키에는 카이쿄 축제와 칸몬해협 불꽃놀이, 바칸축제, 복어의 날 축제, 리틀부산축제 등 많은 축제가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8월 하순 토ㆍ일요일 시모노세키역부터 가라토 일원에서 열리는 바칸축제가 보고 싶어졌다.
전통과 현대문명이 공존하는 도시, 시모노세키는 영천과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가거나 두리번거린다고 해서 누군가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은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부관페리를 이용하면 실속 있는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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