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이 너무 청명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13일 오전에 경산시 하양읍에서 볼일을 보고 오후에는 어디론가 가야될 것 같다. 이놈의 역마살!
이왕 경산에 왔으니 환성사와 하양향교를 보고가자 생각하고 환성사로 향했다. 환성사 가는 길에 경산상엿집 팻말이 나타났다. 목표를 변경하고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입구까지는 찾았지만 1.3㎞ 남은 지점에서 잠시 멈칫했다. 마침 산 쪽으로 승용차 한 대가 올라가서 무작정 따라갔다.
한참을 들어가니 농장을 거쳐 국학연구소가 나타났다. 맘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조원경 이사장)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길래 영천문화원에서 왔다고 했더니 마침 잘 왔다면서 11시에 강의가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들어보라고 권유했다.
경북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 산144-10번지(무학로 62길 162)에 자리 잡은 중요민속자료 제266호인 경산상엿집.
이 상엿집은 지난 2009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1533번지에서 무학산 자락의 현 위치로 이치(移置)한 것으로, 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이 건물은 본래 1891년에 세워졌다고 나와 있지만 본래의 건물을 3번이나 중수했다는 내용이 마루 밑에 적혀있어 초창은 대략 1760년경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흙벽과 평지바닥에 3칸 규모의 판벽과 우물마루를 갖춘 구조로,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한 이 상엿집에는 내부의 전통상여를 비롯해 장례에 쓰던 요여 등 각종 제구와 상여제작 및 운반 등 관련 비용에 관한 문서, 그밖에 마을공동체의 촌계 등 모두 250여점에 달하는 자료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동시대의 우리나라 장례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자천리 마을 중간 국유지에 있던 마을공동소유의 상엿집을 주민들이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사)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지부장 황영례)가 구입해 이곳으로 이전한 후 2009년 11월 20일 경북도청 문화재과에서 문화재청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신청을 했고 2010년 8월 24일 마침내 ‘경산상엿집 및 관련문서’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66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적당한 위치로의 이건과 주변정비가 시급한 상태여서 자연재해에 대비해 산144-35번지로 이건 복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문화재청의 소견에 따라 서흥설계사무소에서 ‘상엿집 이건복원 및 주변정비사업’ 설계를 했다.
경산시는 한편으로 문화재의 활용방안을 모색해 2011년 9월 상기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국전통 민속체험이 가능한 경산 상례공원조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해 경산시의회에서 2011년 12월 30일 상엿집 이건복원 및 주변정리비 2억원과 전시관 건축비 3억원을 투입할 것을 결정했다.
2012년 4월 30일 경산시청은 국제적 명성을 지닌 건축가 승효상씨로 대표로 있는 이로재(履露齋)와 전시관 설계계약을 체결해 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이건 복원을 마치고 13일 처음으로 개방하게 된 것이다.
설계를 맡은 이로재에서는 장소성을 잃은 상엿집이 ‘비슷하지만 실은 사실이 아닌’ 공간에 놓이도록 외형을 꾸미기보다는 ‘죽음에 관한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추진계획 3단계(1단계 상례전시관 신축, 2단계 명상관 신축, 3단계 다목적 홀 및 사무실 신축)중 1단계의 공사를 이로재에서는 ‘절제되고 검박하게 서있는 벽과 건물로 에워싼 공간’을 조성해 경건함ㆍ단순함ㆍ겸손함을 자아내도록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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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영례 소장 |
전시관을 통해 상엿집 마당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 단순함을 강조하고 있고 전시관의 사면에서 상엿집 마당의 상례관련 행사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생명문화인 죽음의 철학적 의미가 감동적으로 전해질 전망이다.
한편, (사)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의 또 다른 형태인 (사)나라얼연구소(이사장 조원경, 소장 황영례)는 경주문화재단과 협력해 10월 20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주말 오후 4시 30분 첨성대에서 재현행사를 실시하고 24일 오전 10시에는 황영례 소장이 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료조사위원 전국행사장인 경부교육문화회관에서 ‘경산상엿집의 복원과 관련자료의 보존’에 대한 특강을 실시할 예정이다.
오전 11시부터 가을 속으로 푹 빠지게 하는 장슬기ㆍ김윤정씨의 바이올린ㆍ피아노 2중주에 이어 ‘책 읽어주는 여자’로 유명한 수원대학교 철학과 이주향 교수의 ‘그림으로 본 무의식과 마음의 상처’를 주제로 한 특강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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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경 이사장 |
최근 ‘세상 속 단신을 위한 이주향의 마음 갤러리’란 부제를 달고 <그림너머 그대에게>를 출간했고 동아일보에 ‘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을 연재하고 있는 이 교수의 강의는 어려운 내용을 유연하게 풀어가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사골을 우려 정성스럽게 준비한 점심식사를 하면서 사담을 나누다가 이 교수가 광주이씨라고 하기에 영천에 시조공묘소인 ‘광릉’이 있다고 알려주니 너무 가고 싶다며 시간이 있으면 안내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예약해둔 기차시간이 빠듯하긴 했지만 최악의 경우 티켓을 새로 끊을 생각을 하고 광릉으로 향했다.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넓고 좋은 자리가 있어요.”하면서 감탄을 했다. 오늘 나를 만나서 이곳에 오려고 하양으로 왔나보다며 크나큰 행운으로 생각해줬다. 짧은 데이트를 통해 앞으로 연락주고 받으면서 누나동생하기로 했다. 나야말로 엄청난 행운을 선물로 받은 날인 것 같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미루다가 얼떨결에 찾아간 경산상엿집. 이른 아침부터 많은 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영천은 소중한 것을 챙길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문화재가 전무하다시피 한 경산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영천이지만 우리 것의 소중함을 간과할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가슴 아프다.
백학서원을 비롯해서 서원과 재사, 유물, 서적 등 곳곳에 산재해있지만 방치된 채 허물어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우리지역 문화재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될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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