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자료/영천 지명유래 및 마을변천사

122. 신방리(新坊里)

이원석(문엄) 2011. 11. 14. 08:52

1) 마을의 자연환경

운주산(雲住山)에서 서쪽으로 뻗은 2갈래의 산맥이 하나는 남쪽 또 하나는 북쪽을 이루며 그 사이에 마을이 생겼다. 흐르는 계곡은 좌우가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기암절벽이 마을의 북쪽을 감싸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 새배이ㆍ새방ㆍ신천(新川)ㆍ신방(新坊) 오천정씨가 주성으로 신방리의 입구에 있는 자연부락이다. 신천 및 새배이는 노인층에서 불려지고 신방은 젊은 층에서 불려지고 있다.

▶ 고란ㆍ골안ㆍ곡내(谷內) 두 개의 야산 사이의 조그마한 골짜기를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하여 약 370년 전 김한미(金漢美)라는 선비가 붙인 이름이며 진주강씨(晋州姜氏)가 주성이다.

▶ 장구밭ㆍ부전(缶田) 강순신(姜舜臣)이라는 선비가 1590년경에 마을을 개척할 때 큰 밭이 있었는데 장고 같이 생겼다고 장구밭ㆍ부전(缶田)이라 붙였다. 진주강씨가 주성이며 이 마을에는 효자각이 있다. 이 효자각은 강창언(姜昌彦)이라는 선비가 살림이 가난하여 평소 부모를 잘 봉양하지 못함을 죄스럽게 여기던 중 부친이 병으로 눕게 되자 평소 좋아하던 물고기를 드리고자 하였으나, 때마침 가뭄으로 인하여 냇물이 말라 고기가 없게 되자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눈이 내리는 냇가를 방황하게 되었는데 냇가에서 큰 물고기가 튀어나왔으므로 이 고기를 부친께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 효자로 칭송을 받고 1945년 후손들이 비각을 세웠다.

3) 마을의 특징

- 돈죽정(敦竹亭) : 정조 때 문인으로 생원에서 가선대부 예조판서를 역임한 김서영(金瑞映) 선생의 정자

- 운산정(雲山亭) : 헌종 때 증직으로 이판(吏判)이었던 김성배(金盛培) 선생의 정자

- 산은정(山隱亭) : 정조 때에 진사였던 강덕문(姜德文) 선생의 정자

- 추모재(追慕齋) : 선조 때 통정대부의 직위인 이수눌(李守訥) 선생의 재사

- 추원당(追遠堂) : 영조 때 정석달(鄭碩達) 선생의 재사

- 취성당(醉醒堂) : 인조 때의 정시간 선생의 정자

- 전적지 : 6ㆍ25사변 때 보현산 전투의 치열한 격전지였다. 국군 제8사단과 인민군 15사단이 8월 23일부터 9월 5일까지 싸웠던 곳이며 국군은 중과부적으로 이곳을 내어 주고 말았으나 결국 9월 16일 다시 수복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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