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자료/영천 지명유래 및 마을변천사

8. 녹전동(錄田洞)

이원석(문엄) 2011. 11. 13. 08:35

 

1) 자연환경

녹전동은 보현산에서 흘러오는 고현천(古賢川) 언저리에 형성된 마을이다. 즉 동쪽으로 고현천이 흘러 그 주위의 기름진 객터에서 삶을 일군 것이다. 서쪽으로는 나지막한 야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살찐 평야를 사이에 두고 대전동(田洞)과 인접하고 있다. 또한 북쪽으로는 역시 강 언저리에 형성된 매산동과 야산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만들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 녹전 조선 영조 때 명고(鳴皐) 정간(鄭幹)이 관직에 재직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조정으로부터 전답을 녹(錄)으로 하사받은 땅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녹전(錄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대초골ㆍ대조곡ㆍ조동 옛날 이곳에 다섯 고을 성주들이 모여서 성주들의 인장(印章)을 대추나무에 결어놓고 놀았다고 하며, 임란 때 참판 우당공의 아들 5형제가 의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영천을 탈환한 후 동구곡당(洞口曲塘)안의 창의대(倡義台)에 있는 대추나무 밑에서 축배를 들었다고 하여 이 마을이름을 대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가장골<佳蔣谷>ㆍ용호(龍湖)ㆍ양호(良湖) 활수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마을 앞에 큰 소(沼)가 있었는데, 소가 있었다고 해서 용호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비석골<碑石谷>ㆍ비석동(碑石洞)ㆍ석동(石洞) 이곳에는 옛날부터 유(劉) 장군의 묘가 있으며 묘 주위에 비석이 있는데 유씨 시조의 비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이 마을이름을 비석동 또는 석동이라고 불렀다.

 

▶ 창녕골<昌寧谷> 양호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창녕성씨(昌寧成氏)가 살았다고 해서 유래된 마을이다.

 

▶ 활수(活水)ㆍ봉계(鳳溪) 영천강 유역인 고현천(古縣川) 건너 동편에 위치한 마을로서 옛날에 이곳 물을 식수로 사용하였고 또 넓은 소(沼)가 있다하여 활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녹전동은 여러 이름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었다. 이를테면 원녹전, 활수, 석동, 창녕골, 가장골, 대추골, 서당골, 예정곡 등이 그것이다.

 

원녹전은 일명 창동이라고도 부르는데 정간(鄭幹) 선생이 청백리로 녹선되면서 나라에서 상으로 받은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활수는 활처럼 물길이 굽어 돌아간다는 자연형태를 보고 만들어진 이름이다. 즉 이를 합하여 녹전1동이라 하였다.

 

석동은 비석이 있는 지역이라 하여 칭하였고 창녕골은 창녕성씨가 살았던 지역이라 하여 지칭되었으며 가장골은 이곳에 큰 웅덩이가 있어 용이 승천한 지역이라 하여 불러졌는데 이를 통칭한 것이 녹전2동이다.

 

또 대추골은 대추나무가 있던 지역으로 임진왜란 때 전몽룡(全夢龍) 선생의 아들 5형제가 의병활동을 하여 아름드리 대추나무에 다섯 개의 관인을 걸었다는 기록과 연관하여 알려진 이름이다. 서당골은 서당이 있었던 지역이고 예정곡은 전삼성 선생이 문인들에게 강론하며 예절을 연수시킨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합한 것이 녹전3동이다.

 

그러므로 근대 행정체계가 정립되면서 대소동(大召洞)=활수, 창녕동(昌寧洞), 봉계동(鳳溪洞), 녹전동(錄田洞), 용호동(龍湖洞=가장골), 양호동(良湖洞), 석동(石洞), 신녕군 대량면(大良面) 하명동(下鳴洞) 일부를 합하여 녹전동이라 명명하고 화동면(華東面)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화동면이 폐지되고 영천면에 속하였으며, 다시 1981년 영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신설된 명산동에 속하였다가 지금은 중앙동에 속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