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살며 사랑하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게 부족한 것 찾기부터’

이원석(문엄) 2010. 10. 24. 12:29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게 부족한 것 찾기부터’


옆방 회의실에서 아름다운 하모니카 선율이 들리고 2층 대강당에서는 풍물단, 소회의실에서는 난타반의 힘찬 리듬이 영천문화의 1번지 조양공원에 울려 퍼지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영천문화원이다. 공원 내에 영남 3대루의 하나인 서세루(일명 조양각)가 우뚝하니 자리 잡고 있고 국민가요‘황성옛터’를 지은 왕평 이응호 선생을 기린 황성옛터비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여성 최초로 당선된 작가 백신애를 기념하는 백신애문학비, 구한말 부자 의병장을 이름을 떨친 정환직-정용기 부자를 추모하는 산남의진비가 세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치열했던 6ㆍ25전쟁에서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했던 영천전투를 기념하는 영천지구 전승비, 지금까지 영천을 거쳐간 목민관들 중에서 공적이 뚜렷한 분들을 위해 지역민들이 세운 선정비를 모아둔 사현대….


고려-조선시대 천혜의 요새였던 영천읍성의 남쪽절벽 거북바위 위에 있는 영천문화원은 독립원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천을 취재하기 위해 방송국과 언론사, 관광객,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영천문화 1번지로 자부하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업무를 보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또는 손님들과 자연을 벗 삼아 대회를 나누기 위해 공원벤치에 앉아있으면 ‘여기가 별 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영천문화원. 내가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지금부터 3년 전 용기를 갖고 영천직업전문학교에서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컴퓨터교육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말 편집부장으로 근무하던 영천의 모신문사 사장으로부터 회사가 어려워 직원 몇 명을 해고해야겠다는 말을 듣고 “내가 나갈 테니까 다른 직원들은 그대로 근무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자진해서 퇴사했다.


사실 우리나라 지역신문들의 경영은 많이 어려운 편이다. 직원 급료와 인쇄비, 사무실 관리비, 식대 등 지출에 비해 광고료와 구독료에 의존하는 수입이 그다지 많지 않아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한 언론생활, 3년간 틈틈이 취재를 하기는 했지만 주로 편집기자로 대구와 서울의 신문사에서 근무하다가 1999년 말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내려와 지역신문사에서 일을 해왔다.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것도 기회다 싶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부족한 부분을 생각해보았다. 잘할 수 있는 일은 편집기자를 하면서 다져진 문장력과 정확한 맞춤법이 재산이었고 3년여 간 영천 곳곳을 누비면서 매주 1회 120여회 연재한 향토사관련 답사기를 연재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조판시스템에서 매킨토시 편집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신문사를 그만 두는 바람에 워드와 인터넷검색 외에는 거의 컴맹에 가까운 컴퓨터 실력을 키워야 되는 과제가 생겼다.


직업전문학교에 마침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6개월 과정인 PC정비반이 개설됐다. 주위의 시선이 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급하게 일자리를 구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라”는 아내의 조언에 힘입어 과감하게 등록을 했다.


그때까지 생소하기만 했던 컴퓨터의 구조와 워드프로세서, 오피스, 파워포인트, HTML 등 여러 가지 내용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문과출신이라서 운전면허증 외에 마땅한 자격증 하나 없던 터라 먼저 워드프로세서 2급과 인터넷정보관리사 2급을 취득했다.


6개월 동안 어느 정도 컴퓨터에 눈을 뜨긴 했지만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3월부터 1년 과정으로 스크린인쇄 기능사반이 개설되었다. 인쇄뿐만 아니라 컴퓨터그래픽을 배울 수 있어서 다시 등록을 했다.


스크린인쇄과정과 PC정비반에서 기초를 익힌 포토샵, 다소 난해한 일러스트레이터를 함께 배워나가던 중 5월말 경 갑자기 인터넷신문을 창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인터넷신문을 창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힘든 일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취재, 기사작성, 사진촬영, 웹 편집 등 별로 힘들 것 같지 않았다. 수익창출이 좀 불분명하기는 했지만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고심 끝에 제호를 ‘영천뉴스24’로 정했다. 도메인은 'www.yc24.kr'. 신문사 로고를 만들고 솔루션 회사를 선택했다. 홈페이지 작업을 하면서 경북도청에 등록신청을 하고 집에서 운영하는 사업장의 창고를 정리하고 청소해서 사무실을 만들었다. 모든 과정을 직접 해보고 싶어서 도배와 장판도 아내와 둘이서 했다.


블로그(www.blog.daum.net/lws3526)에 내가 왜 인터넷신문을 만들어야 되는지 이유를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잘 운영할 거라며 격려를 해주셨다.


1999년 말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와서 영천시청소년지원센터 자원봉사자와 영천문화원 문화재가이드반, 영천향토사연구회, 영천문인협회, 글밭문학회, 영천아리랑보존위원회, 백신애기념사업회 등에 차례로 가입했고 틈틈이 취재를 다니면서 문화예술단체와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해서 많은 애착이 갔다.

 

영천에 애착을 가지고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의 곁에서 그분들이 찾아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쉽게 풀어서 홍보해야했고 소리 소문 없이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의 삶을 알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좋은 일에 동참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싶었다. 나아가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해 있는 영천의 발전상과 긍정적인 내용들을 타 지역에 알려 영천의 이미지를 좋게 가꾸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생겼다.


남들이 보기엔 작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내겐 너무도 소중하고 편안한 휴식처인 사무실과 내 의지대로 방향을 설정해 나갈 수 있는 나의 글밭이 조만간 생긴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가야할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지역 문화예술을 전승ㆍ발전시켜 나가고 마모되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가시덤불 길을 영천에 대한 사랑 하나로 헤쳐 나가며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영천문화예술가족들,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의 인성함양을 위해 직접 학교로 찾아가서 교육에 힘쓰는 영천시청소년지원센터 자원봉사선생님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뜻함을 전하는 많은 봉사의 손길, 자신의 불편한 몸을 탓하지 않고 정상인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인들,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보다 잘사는 영천을 일궈 후세에 물려지기 위해 불철주야 힘쓰는 많은 시민들….


사람 사는 곳에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이제는 나만의 글을 쓰면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야겠다.”우리 가족들이 만든 '별빛촌’이 영천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아가면서 느끼는 흐뭇함만큼이나 내가 쓰는 글들이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용기를 주고 나의 작은 몸짓에 많은 분들이 웃을 수 있다면 너무너무 행복할 것 같다.


한 달여의 준비 끝에 드디어 7월 11일 영천뉴스24 홈페이지가 열렸다. 그동안 많이 쓰지 못했던 글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면서 영천을 위해 많은 글을 썼다. 특히 영천의 문화유산을 보고 느낀 기록을 꾸준히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처음 신문은 만들 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영천뉴스24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수익구조 악화로 경영이 어렵다는 지역신문사의 틀을 무너뜨렸고 상업적이지 않으면서 이웃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다양한 기사들로 채워나갔다. 지금까지 쓴 기사가 7,500여건에 달할 정도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와 사건이 있는 곳이면 주저 없이 달려 나갔다.


특히 문화예술과 소외된 이웃, 자원봉사자,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영천향토사연구회와 문인협회 등의 활동을 병행하면서 문화예술계 인사등과는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아닌 같은 사고와 일을 하는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영천문화원에서 사무국장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해오던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일인 것 같았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내가 적임자라며 권유를 했고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라면 한번은 거쳐야할 자리라고 생각해 쾌히 승낙을 했다.


고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왔는데 직업으로 연결된 것이다. 두 달여 남은 2009년 동안에 문화유산총서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문화유산에 관한 내용을 편집해 『영천문화유산답사기』를 발간했다.


영천을 위해서 꼭 필요한 책이라며 온갖 찬사가 쏟아졌고 아주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다. 격려에 용기를 내어 요즘은 올 연말 발간예정으로 영천마을변천사와 지명유래에 대한 집필을 하고 있다. 책을 준비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면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도움을 받으면서 즐거워할 독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4년 전 퇴사로 인해 힘들었던 시절, 미래를 위한 작은 선택이 오늘 내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 글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은 분들에게 조금이라고 앞날의 지침이 되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영천뉴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