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시와 연애를 하자(장병훈 편집위원)

말머리 성운 - 허만하

이원석(문엄) 2009. 11. 22. 21:51

                              말머리 성운

                                                                                                                                                                                                               허만하(1932~)
1

말은 가슴 안에서 다져진 뜨거운 언어가 폭발적으로 뛰쳐나온 순결한 질주다. 어둠의 극한에서 세계의 기원을 생각해 내려 수직으로 목을 치켜들고 멀리를 살피고 있는 한 마리 말. 목덜미 이하는 처음으로 별빛을 만들어 낸 캄캄한 어둠이다.

 

2

허무와 허무가 서로를 비추는 1억 광년 하늘을 말굽 소리도 없이 달리는 말. 영하의 온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말. 시여, 교만하지 마라! 중심도 없이 터지는 자욱한 불의 물보라 사이를 달리는 말의 영원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태어나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별빛이다.

 


 

 

무서워서, 두려워서, 피하고 싶은, 그러나 감당할 수 있기를


아찔하여라, 캄캄한 어둠을 삼켜 먹고, 별빛을 만들어낸 말머리 성운이여. 아, 무서버라. ‘말굽소리도 없이 달리’다가 마츰내 별빛으로 폭발하는 말머리 성운이여. 아, 도망가고 싶어라. ‘영하의 온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너를 보면……


칠흑같은 어둠을 삼키지 않으면, 별로 빛날 수 없고, 꽃으로 피어날 수도 없는, 그리고 한 편의 시로 잉태될 수도 없는,


아, 요령부득의 섬찟한 진실이여!   

 


 

  

   
▲ 시인 장병훈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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