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시와 연애를 하자(장병훈 편집위원)

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 이기철

이원석(문엄) 2009. 11. 30. 08:45

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이기철
 
나는 이 세상을 스무 번 사랑하고

스무 번 미워했다

누군들 헌 옷이 된 생을

다림질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으랴

유독 나한테만 칭얼대는 생

돌멩이는 더 작아지고 싶어서 몸을 구르고

새들은 나뭇잎의 건반을 두드리며

귀소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데리고 가야 할 하루를 세수시키고

햇볕에 잘 말린 옷을 갈아입힌다

어둠이 나무 그림자를 끌고 산 뒤로 사라질 때

저녁 밥 짓는 사람의 맨발이 아름답다

개울물이 필통 여는 소리를 내면

갑자기 부엌들이 소란해진

다나는 저녁만큼 어두워져서는 안 된다

남은 날 나는 또 한 번 세상을 미워할는지

아니면 어제보다 더 사랑할는지 

 


 

저물녘에, 고요히 그대 삶을 일으켜 세우기

삶이라는 것이 그러하네. 저물녘에는 ‘누군들 헌 옷이 된 생을 다림질하고 싶’어지는 것이네. 생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구겨진 우리네 삶을 돌이켜보지는 않을 것이네.

그대, 너무 아파하지 마시게. ‘유독 나한테만 칭얼대는 생’이라고 말이네. 더 아프게 울고 있는 그대의 이웃도 있으니까 말이네. 그리고 적당히 칭얼대는 생이 그대 심장의 맥박을 뜨겁게 돌게 하는 삶의 묘약이라는 것도 잊지 마시게.

 

‘남은 날 나는 또 한 번 세상을 미워할는지/ 아니면 어제보다 더 사랑할는지’ 몰라도 그대가 ‘데리고 가야 할 하루를 세수시키고’ 또 다시 환한 내일을 기약해야하는 것이 그대의 과업이라네.

 

 


 

   
▲ 시인 장병훈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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