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번 보성 근교에서 만난 일본인 자전거 여행자입니다. 부산에 있을 적에 써놓은 원고 중 2009년 8월 16일 분부터 보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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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단히 저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1980년 3월 17일 일본에서 태어나, 오사카외국어대학(지금의 오사카대학) 힌두어과를 졸업하고, 일본의 15개의 기업으로부터 장비 보조의 스폰서를 받아서 출국 전에는 이러한 사실들이, 라디오, 신문에서도 보도가 되면서 자전거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저 여행에는 일본에서 세계 각지로 편지를 전달하는 계획이 있습니다. 편지를 전달하면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보다 깊은 교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에 건네 드린 제 명함에는 자전거 세계 일주 우편배달부라 적혀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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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2일, 첫 여행지로 택한 곳은 ‘인도네시아’였습니다.
그러나 극도의 부담감과 갑작스런 환경 변화로 인하여, 패닉 장해라는 병에 걸리고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2008년 5월, 요양차 일본에 일시 귀국하여 휴식을 취해가며 훈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달간의 도보로 야숙을 하면서 저 고향의 절들을 둘러보았고, 자전거로 오키나와(일본 최남단 섬/인구 약 132만명)와 홋카이도(일본 최북단 섬/인구 약 570만명)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8월 6일, 재차 해외로 떠났습니다. 말하자면, 두 번째의 도전인 셈입니다만,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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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주 마산시를 빠져나와 서면(西面)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늦은 아침을 들었다. “00지 아래엔 식당이 있다” 나에게 이것은 발견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그곳에서 비빔밥(3,500원)을 주문했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한글 메모를 보여드렸더니, 정수기의 물을 피트 병 가득 넘치도록 담아 주시고, 너무나도 친절하게 커피까지 대접해주셨다.
요사이 정신적으로 컨디션이 별로 좋질 않아, 간혹 지참하고 있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는데, 이런 친절한 분을 접하게 되면, 순식간에 마음의 먹구름이 확 사라져 가는 걸 느낀다. 한국 사람들의 친절한 마음씀씀이 덕분에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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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에서 국도를 벗어나 일본의 도로와 흡사한 2차선 양면 통행의 한적한 도로를 달린다. 무척이나 조용하다. 만약 길가의 한글 간판이 없었더라면, 산간의 푸른색의 논이 줄지어 이어지는 풍경에, 일본이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오늘 목표로 설정한 진주에는 15시에 도착하였다. 편의점에서 주스를 사 마시며 한숨 돌리고 있으려니, 점원이 내게 뭔가 말을 걸어오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죄송한데요, 저 일본 사람인데요”라고 하니, 쿄토의 어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형님의 명함을 내게 보여주었다.
드라마 <주몽>에서 일본어의 ‘하카세’(박사)는 ‘박사’라 발음하는걸 알고 있었기에, “아, 형님이 박사시군요”라고 했더니, 무척이나 기뻐하며 내게 아이스크림을 대접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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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시내 중심부로 이동하였다. 무척이나 깨끗한 강이 있었다. ‘남강’이라는 이름의 강이라 한다. 강변은 깔끔히 정비되어 있고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자전거 이용자가 부쩍 눈에 띈다. 부산이나 마산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한지라 무척이나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밤은 여기에 텐트를 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가면서, 시내를 어슬렁거리던 중, 여관 간판이 보여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미리 시험 삼아 여관 아주머니한테 숙박 요금을 물어보니, “일본사람은 사절이야”라고 하는 건지, “한국말도 할 줄 모르는 일본사람은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어찌됐던 ‘일본’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하는가 싶어서, 화가 치민 나는 “빠가야로”로 되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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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본사람들에 대한 원한이란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라며 처음 겪는 경험에 착잡한 심정이었다.
남강변으로 텐트를 치러 갔다. MTB 자전거로 지나가는 남성에게, “여기다 텐트를 쳐도 됩니까?”라고 한글로 써 있는 종이쪽지를 보여주니, “자 마셔요, 마셔요”라며 내게 주스를 따라주며,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그는 “우리 가게에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가보지 않겠어요?” 라고 권유한다.
해가 저물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는지라 그를 따라가 봤다. 그는 나를 아주 멋진 MTB샵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의 말대로 그 가게에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김’이라는 성을 가진 남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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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아까 그 청년이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시죠?”라고 말을 걸어와, 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한국 음식 중에 어떤 걸 좋아하죠?”라는 질문에 “삼겹살”이라 대답하니, 웬걸 저녁은 가까운 고기 집에서 삼겹살 대접을 받고 말았다.
윗사람 앞에서의 행동이라던가, 주법, 길 물어보는 방법 등 한국 사회의 기본 예절 등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었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사우나로 향했다. 물론, 사우나 요금도 그가 부담해 주었다.
내가 처음 말을 건 ‘박’이라는 성의 젊은이는, 내가 좀처럼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색을 하며 화를 내는 것이 옥 의 티이긴 하지만, 그 청년이야말로 ‘호한’이라 불릴만한 유쾌한 청년이었다.
그의 집에는 같이 살고 있는 또 다른 청년이 있었다. 그가 경영하고 있는 피자집에서 일하는 젊은이라고 한다. 이 청년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지라,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중에 어느덧 새벽 1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소주를 마신 탓인지 몸이 후끈 달아올라 좀체 잠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하고 싶다. 최고로 멋진 하루였다. 오늘의 주행거리는7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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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こんにちは。先日、宝城近郊でお会いした日本人の自転車旅行者です。原稿をお送りしますが、釜山から書きためている分がありますので2009年08月16日分からお送りします。 簡単な自己紹介をしますと、1980年3月17日 日本国徳島県生まれ大阪外国語大学(現 大阪大学)ヒンディー語科卒業 日本企業15社のスポンサーをつけて装備を補助していただき、出発前にはラジオ、新聞にもとりあげられ自転車世界一周旅行にでました。僕の旅行には、日本から世界各地への手紙を届けるという計画があります。届けながら、いろんな国の人とより深い交流ができると思ったからです。ですので、お渡しした名刺には自転車世界一周郵便配達人 と書いてあると思います。 2008年4月12日より出発しましたが一国目のインドネシアにて、極度のプレッシャーと環境の変化の為にパニック障害という病気にかかり、うつ病も併発しました。 2008年5月に一時帰国。それから療養と訓練を日本で行いました、60日間徒歩で野宿を重ねて地元の寺を巡ったり、沖縄、北海道に自転車で行ったりしました。今回8月6日より二回目の出発をしました。いうなれば、再挑戦ですが、不安でいっぱいの毎日です。 | |
뉴스에이 이승렬 기자 090@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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