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박재영 다니엘씨 |
≪안녕하십니까? 저 역시 제 아버님 어린이 탐정소설 <特進生> 자료를 찾다보니, 1935년 <소년중앙> 5, 6월호를 찾지 못하여 계속 노력중인데, 마침, 어제 국립중앙도서관의 직원 한분이 이원석님의 기사를 보고 제게 알려 주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문의해 보는 것입니다. 2009년 3월 11일 현재, 그 자료는 찾으셨는지요? 연세대학교 도서관 국학자료실에서 창간호, 2, 3, 4, 7월 것은 찾았으나, 5, 6월 것은 없었고, 여의도 잡지박물관에도 창간호만 있었습니다.
제 아버님, <구보 박태원탄생 100주년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서, 금년 100주년 행사를 준비중에 있습니다. 구보학회 회원들에게도 부탁했지만, 아직입니다. 바쁘신 중에도 회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손전화는 010-6320-5486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재영 다니엘 배상≫
박재영(朴再英, 별명 다니엘박)은 키워드 <구보 박태원>의 둘째 아들로서 서울 돈암동에서 1942년 1월 15일 출생하여 계속 살아온 서울토박이이다. 1988년 7월 19일자로 박태원의 문학작품에 대한 전면적인 해금이 이루어지고 나서, 그 때부터 남쪽에서 출판준비를 할 때, 작품에 대한 자료수집과 관련된 사진 등 자료를 구하는데 전심전력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아버지 작품 발굴에 힘써 왔고, 현재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연구자들에게 내가 찾아 정리한 자료를 제공하고, 그들과 특히 가족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더불어 아버지가 쓰신 소설과 수필 중에 실제의 본인 삶을 그리신 자화상 소설도 상당히 있어서, 그 글에 대한 비교연구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으며, 연구자들과 함께 아버지 생전에 함께 생활을 하셨던 친척 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 유년시절을 비롯하여, 청년시절, 장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나는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날 때,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230번지에서 부모님과 누님 두 분, 형님과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고, 성북초등학교 3 학년을 다니고 있었다. 그 때는 소설을 쓰시는 아버지가 전업 작가이셨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졌지만. 다른 사람과 달리 아버지는 집에서 늘 집필을 하셨기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삶이 길어, 지금도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1950년 이후, 북쪽에서의 삶에 대하여는 1990년 형님(朴一英)이 미국시민권자로서 평양에서 개최되었던 범민족대회에 참석하는 기회로, 북쪽 평양에 살고 계시는 새어머니(권영희)도 만나고, 또 큰누나(朴雪英)도 만날 기회가 있어서 북쪽에서의 아버지 삶에 대하여 들을 기회가 있었고, 아버지 묘소도 참배하고 사진을 찍어 와서 다녀온 이야기를 통하여 알게 되었으며, 의붓딸 정태은(북쪽 소설가)이 북쪽에서 발간되는 계간 문예지 <통일문학>(2000년 44호, 45호)에 두 차례에 걸쳐 쓴 글 <나의 아버지 박태원>을 통하여, 1956년부터 돌아가신 1986년까지 함께 살았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5. 12. 11. ~ 12. 13. 중국 북경 혜교 호텔에서 남쪽, 북쪽 국문학자와, 중국의 조선족 국문학자등 3 개국 합동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국제학술회의시, 참석했던 북쪽학자를 통하여, 또한 2006. 6. 19 ~ 6.21. 금강산에서 있었던 제14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시 평양에 살고 계신 큰누나(박설영)를 통하여 아버지 북쪽에서의 삶에 대하여 자세한 내역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구보학회>가 2005년 6월 4일 경희대학교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으며, 그 전에 구보학회 창립준비모임에서부터 참석하게 되었고, 매년 여름과 겨울에 개최하는 학회 논문발표회에 참석하여 배우고 있다. 물론 구보학회 회원은 아니지만, 매 학회 때마다 새로운 자료 발굴을 제공하고, 2009년이 <박태원 탄생 100주년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특히 2009년 6월 16일부터 7월 5일까지 <청계천문화관>에서 100주년기념 유품 및 작품집 원본 전시회 준비를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경제학을 전공하였기에, 국문학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1988년 해금 후에 자료수집과 동시에, 그 해 8월에 도고온천에서 있었던 <해금작가 저작권 세미나>에 유족으로서 참석한 것을 비롯하여, 많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위하여 아버지 <구보 박태원>의 작품에 대하여 연구를 하게 되었으며, 구보 박태원 연구자들을 통하여서도 배우게 되었다.
구보 박태원의 저작권 상속등록은 1989년 2월 28일자로 당시 문화공보부에 등록번호 제 890038 호로 등록을 필하고, 현재 유족을 대표하여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음을 밝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