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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마을에서 만난 이들 -낙안읍성과 선암사-(우리님)

이원석(문엄) 2006. 12. 7. 17:03

 

선운사와 낙안읍성을 놓고 저울질 하다가 낙안읍성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사실 답사의 목적이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만났으니 좀 떨어진 곳에 가보 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답사건 아니건 스스럼 없이 함께 할 수 있 는 그 무엇이 우리들 사이에 상존한다는 것은 굉장히 도움이 되는 일이다. 만난 사람은 셋. 한 사람은 아홉살 차이가 나고 다른 한 사람은 더 많아 열 네살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일반적인 세계에서 장벽이 될 그러한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한 채 항상 푸근하다. 시간이 생기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이들이 그들이다. 친구들은 이미 뒷전으로 멀어져 찬밥신세가 된지 오래다. 무엇 때문에 그리 되었을까? 답사라는 것을 함께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 노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답사 아닐 때 만나는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오늘도 만나자마자 어디론가 떠나긴 하지만 본래 그것을 목적으 로 만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떠나는 때에 비하여 이들과는 함 께 가는 순간부터 편안하고 즐겁다. 왜 그러는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 낙안읍성(자료:국가문화유산 정보)사적302호/면적223,108평방미터 /조선초기/순천시낙안동)
승주 IC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나와 선암사쪽으로 행하는 길은 분명 와보았 을 터인데 기억에 없다. 하긴 낙안읍성도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터에 도중의 길이야 말 할 나위가 있으랴. 선암사를 제쳐 두고 먼저 들른 낙안읍성은 더 욱 더 생소한 모습이었다. 해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모습이다.
이곳을 처음 지나던 때가 10여년 전. 지도에 표기된 곳만을 마치 발도장 찍듯 섭렵하고 다니던 호기어린 그 시절의 기억과 비교할라치면 아예 상전 벽해가 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번듯한 주차장에 밀집한 민박집, 이런저 런 가게들은 이곳으로부터 나를 점점 더 떼어놓고야 말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입장료도 받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명절이라 그런지 그냥 통과. 일단 횡 재한 기분이다.
"성이나 한 번 돌아보죠." 그랬으면 싶었다네, 나역시도. 답사를 한답시고 새삼스레 보존가옥들을 기 웃거리는 것을 오늘 그대들과 만나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그래 선뜻 마을을 가로질러 성벽에 올랐다. 1년쯤 전에 호남지역의 답사 에 참가했던 두 사람이 드문드문 그 때의 이야기를 되새기는 것이 내게도 즐겁다. 며칠 전부터 낙안성에 가자고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대구로 귀향한 이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 낙안읍성인데.... 너무 좋은데....' 전화기 저편의 표정이 상상이 된다. 미안한 마음도 조금.
성을 따라 돌다 '마을이 가장 예쁘게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아니, 쉬었다기 보다 마을을 조망하기 위해 잠시 지체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추 수가 끝나면 모두 새 짚으로 단장을 할텐데 그렇게 되면 얼마나 더 예쁠 것 인가. 상업적인 목적이 있든 어쨌든 마을 전체가 고집스레 초가를 지탱한 채 버티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반면 우 리들은 그들의 불편을 담보로 하여 그저 눈맛 좋은 잠깐의 정취를 즐기고 있는 것이라는 송구함도 이어졌다.어? 저 집은 폐가였는데 찻집이 되었네? 저 집 참 예쁘죠? 그 때도 그랬 어요. 저 집이 그 때 민박했던 집이예요. 동행의 옛 추억을 되새김이 듣는 나까지 흐뭇하게 해준다.
▲ 남문주변(동-서)(국가문화유산정보)
여름의 폭우 때문에 성벽이 무너져 더 갈 수 없게 된 바람에 일행은 잠시 성문의 누각에 앉아 다리쉼을 하였다. 낙안읍성에는 복원한 낙민루(樂民樓)를 비롯하여 임경업장군의 비각이나 객사도 있고 천연기념물인 노거수도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보존가옥들은 헤일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일행은 그런 곳들은 한 군데도 들르지 않은 채 민속식당에서 보리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이런 모습들은 이제 이처럼 정형화해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일 게다. 그나 마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민속촌에서 보는 박제된 전통가옥들에 비하면 얼 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옛이야기처럼 전해만 듣던 초가마을의 정취를 되새길까.
이곳 저곳 기웃거리자거나 집집마다 들르자고 말 꺼내어 답사객의 티를 내려한 동행이 없었다는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그거야 뭐, 가옥에는 관심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고 사람이 사는 집이니 기웃거려서 미안할 것 같 은 고운 마음씀에서였을 수도 있다. 나로서는 이들과 함께하는 넉넉한 공간 이었다는 것으로 기억의 새김에 한 줄을 더할 것이다. 다시 또 이곳을 들르 게 된다 해도 어설픈 답사라는 미명하에 오기보다는 오늘과 같은 새김을 한 줄 더 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그 때에도 오늘을 되새길 것이다.

선암사
▲선암사(사찰/조선시대)
선암사로 가는 도중에 잠시 금둔사엘 들렀다. 처음, 떠남이라는 것에 인생 을 내맡긴 다음부터 그것은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를 찾았었다. 관광지, 절경, 맛있는 음식점, 생태기행, 문학....
어쩌다 보니 이제 문화재쪽으로 편 향되어서 행로에 문화재가 있는 곳이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게 되어 버렸다. 다른 형태의 여행은 구미에 당기지 않게 된 지가 오래지만 그러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 또한 마음이 가다보면 언젠가는 찾겠지. 금둔사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지 않다면 들를 일이 없는 절이다. 그것은 절집이 마음을 끄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보물은 신라시대의 삼층 석탑과 다른 곳에서 예를 보기 어려운 석불비상(碑像)이라는 것이 있다.
답 사를 숱하게 다니다 보니 속에 든 것은 없이 눈만 높아지고 또한 신라시대 의 석탑같은 것은 무수히 보아온 터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삼층 석탑이련만 무심히 지나치고 만다. 이것이 어느 폐사지쯤에 있었더라면 굉 장히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탑이 놓인 곳이 별로 마음을 끌지 못 했다는 것일 게다. 그 점은 석불비상 또한 또한 마찬가지이다. 특이한 조형 으로 한동안 발길을 붙잡았어야 하건만 그렇지 못했음을 순전히 절집의 분 위기로 돌려버린 비겁함을 자인한다.
그러나 악착같이 그럴듯한 핑계를 대자면 선암사가 재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이쪽 저쪽에 자리 잡은 두 절이 송광사와 선암사이다. 어떤 이는 송광사보다 선암사가 더 낫 다고 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게 말하는 편이지만 그거야 개인의 취향이 라 밀어부칠 수도 있고,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곳이 아닌 곳을 좋다고하여 튀어보려는 치기일 수도 있다.
입장료 내는 곳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답사를 다닐수록 몸에 배게 된 습 성이 되었는데 그런 딴에는 이곳은 심심치 않게 들른 곳이다. 입장료 내는 곳을 들르게 될 때는 대부분 누군가의 동행이 되었을 때가 많은데 그만큼 이곳은 권장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승선교
▲선암사 승선교(보물404/조선시대/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를 이야기할 때 항상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승선교이다. 승선교의 홍예 사이로 승선루가 들어앉은 사진을 한 번쯤 보지 못한 사람은 없으리라. 지난 여름 폭우에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노심초사하며 찾아가 보았더니 망가진 것은 승선교 아래쪽에 있는 다리였다. 물론 다행이다. 홍예로 만든 다리나 문이 아름답다 하나 승선교에 따를만한 것이 없다.
정교함, 견고함, 아름다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입장료만 없다면 이 것 하나만 보기 위해서라도 더 자주 들렀을 것이다. 송광사가 조계종의 본산임에 뒤지지 않게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이다. 그런만큼 문화재라 할만한 것도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보물급에 해당하는 것이 예닐곱점쯤 되는데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아도 우후죽순처럼 널려 있는 각종 전각들이 정신을 앗아간다. 없는 전각이 없는 것은 역시 본찰인 터. 전각에 대해 예습해와서 아는 척 하기에 안성마춤인 절이다. 그쯤 되면 뒷산을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부도쯤은 보지 않아도 흡족하다.
일행 역시 부도나 마애불에 대한 욕구를 갖지 않았다. 하긴 오늘은 딱딱 하게 답사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내키지 않은 만남이었다. 생활 속에 답사가 배어들어와 있기에 모르는 새에 자연스레 답사길에 나서게 된 것이 었다 할지라도, 굳이 문화재를 찾아 발길을 추스르는 노고는 하고 싶지 않 았던 것일 게다. 그저 가벼운 걸음으로 거닐며 짧은 이야기와 가벼운 웃음 들, 그리고 부드러운 공감을 나눈 것으로 흡족했을 터이다.
내려가는 길에 사진에서 나오는 구도처럼 승선교 안에 승선루를 넣어보기 위해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가 용머리를 보게 되었다. 수차 선암사에 왔다 가고 승선교를 보며 감탄하고 다녔음에도 이제야 용머리를 본 것을 무지 외 에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알았다는 것은 나의 지식에 하나의 목록이 더해졌다는 것 뿐, 승선교가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의 느낌에 는 줄어들거나 더해지는 몫이 없다.


여수에 있는 얼님께 전화를.
▲금동사리탑
선암사를 나오며 여수에 있는 얼님에게 전화를 했다. 페달을 밟는 발에 힘이 들어감은 그들을 만난다는 설레임 탓이었을 것이다.
남쪽 끝의 항구도 시. 한 사람은 만난 지가 1년도 넘었고 한 사람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반 가움의 정도가 같지야 않았겠지만 어느 편이나 미진한 반가움은 없었다. 우 리들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고기잡이배들의 분주함이 가득한 바닷가에 면 한 까페에서 차를 마셨다.
도대체 무슨 못다한 그리움이 남아 나는 남쪽의 끝 바다와 닿아있는 이곳 까지 와서 이들을 만났던 것일까. 떠나는 순간까지, 아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 그리움의 근원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 고 또 생각해 보아도 그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 여긴다. 그것이 무엇때문이었는지도 모르면서 언젠가 내가 또 그곳에 있게 되면 그 들을 보고싶어 할 것이며 그 근처를 지나면 그들이 떠올라 그리워질 것이다.


98. 10.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