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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공예 김덕주씨 대한명인 선정 - 4월 13일 전북도청서 추대식 열려

이원석(문엄) 2007. 3. 18. 02:45

▲ 제6차 대한명인에 선정된 참선공예 김덕주씨

 

“큰 욕심 안 부리고 묵묵히 천직을 수행했을 뿐인데 분에 넘치는 영광이 주어져 송구할 따름입니다.”


영천시 본촌동에서 참선공예를 운영하고 있는 보운 김덕주(48)씨가 영천최초로 제6차 대한명인에 선정되었다.


사단법인 대한명인 문화예술교류회에서 경력 30년 이상인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수상과 봉사경력, 작품 등 서류심사에 이어 직접 작업현장을 방문하는 등 엄격한 심사 끝에 선정한 올해의 명인은 전국에서 단 5명뿐이다.


올해로 경력이 31년째인 김씨는 일단 응모는 했으나 3년 정도는 기다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빨리 선정되었다며 겸손해했다.


추대식은 4월 13일 전라북도 도청에서 열릴 예정인데 이날부터 21일까지 9일간 전라북도 청사 대강당 및 광장, 야외광장에서 50여개 팀의 전통음악 공연과 전통공예전시, 시연, 체험, 전통음악 전시 및 시연이 어우러진 대규모의 문화예술축제인 제2회 대한민국 대한명인전을 개최한다.


아내 최순자(43)씨에게“늘 미안하고 고맙다”는 김씨는“앞으로도 30년전 처음 목탁을 만들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나아갈 것”이라며“기회가 주어진다면 명장이나 인간문화재에도 도전해 보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목탁제작에 관한한 1인자로 통하는 김씨가 목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당시 18세였던 김씨가 대구 불로동에서 가구 일을 하던 중 인근에 있던 목탁제조공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내 목탁제작의 권위자였던 박영종 씨에게 10여 년간 기술을 배운 후 대구에서 공장을 경영하다가 10여 년 전에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왔다.


“목탁 만드는 일은 하면 할수록 힘이 들고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습니다.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마음을 비우고 인내심을 갖고 하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환풍 시설 빼고는 처음 시작할 때와 달라진 작업환경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김씨는 조카 조종오(30) 씨와 함께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꼬박 일하며 하루 작은 목탁 15개 정도를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향나무 서각 병풍과 불교에서 취급하는 죽비와 목탁, 주장자 등도 생산하고 있다. 경상북도관광품기념경진대회에서 금상과 은상, 입선, 대한민국공예예술대전 특별상,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 특선 등 숱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김 씨에게 많은 스님들이‘스님 될 팔자’였다고 말했다.


스님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를 감당하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목탁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을 때 지난달 작고한 부친이“내가 중이 됐으면 네가 만든 목탁 팔아줬을 텐데…”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소문이 나 전국에서 스님과 불자들, 불교대학과 불교교양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이 찾아오고 있다. 택배를 이용, 주로 불교서점 쪽으로 많이 납품하지만 대구, 포항, 구미 등 가까운 곳은 아내 최씨가 직접 배달하기도 한다.


혼자계신 노모(78)가 안쓰러워 수시로 괴연동 집에 찾아가서 자고 나온다는 김덕주씨는 목공예과에 다니는 아들(23)과 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딸(22)이 결혼하고 나면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 참선공예 내부에 전시된 김씨의 작품들 

 

“재료구입부터 말리기, 제작 등의 과정을 거쳐 목탁이 되어 나오는 데는 대개 2년 정도가 걸립니다. 살아있는 소리가 나오려면 예술가의 혼이 함께 들어가야죠.”


영천향토사연구회와 영천공예협의회 회원, 남부동 자율방범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우리 것의 보존은 참으로 귀중해 보였다.


김씨가 대한명인으로 선정되면서 문화예술의 고장이라고 자부하는 영천에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생겼다. 젊은이들이 3D업종으로 여겨 대가 끊길 지경이라며 걱정만 하지 말고 장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긍지를 심어줘 영천에서 제2의 명인뿐만 아니라 명장과 인간문화재까지 배출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