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참아서 분을 이기고 착함으로써 악을 이겨라. 보시를 줌으로써 인식을 이기고 지성으로써 거짓을 이겨라”
영천 I.C 근처 본촌공단 입구에 자리 잡은 참선공예 대표 김덕주(47) 씨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아내 최순자(42) 씨가 남편을 위해 써놓은 글귀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린다.
김씨는 요즘 5월에 열리는 경상북도공예품대전과 경상북도관광기념품경진대회에 출품할 작품의 아이디어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목탁제작에 관한한 1인자로 통하는 김씨가 목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당시 18세였던 김씨가 대구 불로동에서 가구 일을 하던 중 인근에 있던 목탁제조공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내 목탁제작의 권위자였던 박영종 씨에게 10여 년간 기술을 배운 후 대구에서 공장을 경영하다가 10여 년 전에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왔다.
“목탁 만드는 일은 하면 할수록 힘이 들고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습니다.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마음을 비우고 인내심을 갖고 하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환풍 시설 빼고는 처음 시작할 때와 달라진 작업환경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김씨는 조카 조종오(29) 씨와 함께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꼬박 일하며 하루 작은 목탁 15개 정도를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향나무 서각 병풍과 불교에서 취급하는 죽비와 목탁, 주장자 등도 생산하고 있다. 경상북도관광품기념경진대회에서 금상과 은상, 입선, 대한민국공예예술대전 특별상,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 특선 등 숱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김 씨에게 많은 스님들이‘스님 될 팔자’였다고 말했다.
스님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를 감당하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목탁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을 때 지난달 작고한 부친이“내가 중이 됐으면 네가 만든 목탁 팔아줬을 텐데…”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소문이 나 전국에서 스님과 불자들, 불교대학과 불교교양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이 찾아오고 있다. 택배를 이용, 주로 불교서점 쪽으로 많이 납품하지만 가까운 곳은 직접 배달하기도 한다.
혼자계신 노모(77)가 안쓰러워 수시로 괴연동 집에 찾아가서 자고 나온다는 김덕주씨는 목공예과에 다니다 군에 입대한 아들(22)과 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딸(21)이 결혼하고 나면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재료구입부터 말리기, 제작 등의 과정을 거쳐 목탁이 되어 나오는 데는 대개 2년 정도가 걸립니다. 살아있는 소리가 나오려면 예술가의 혼이 함께 들어가야죠.”
영천향토사연구회와 영천공예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우리 것의 보존은 참으로 귀중해 보였다.(2006. 3. 6 경북동부신문)
'영천뉴스24 > 인물·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미지, 직동지 생활쓰레기 수거 - 중앙동청년회 회원가족 30여명 (0) | 2007.03.19 |
|---|---|
| 참선공예 김덕주씨 대한명인 선정 - 4월 13일 전북도청서 추대식 열려 (0) | 2007.03.18 |
| 화북면 의용소방대 산불예방 캠페인 (0) | 2007.03.15 |
| 금호강주변 환경정화운동 전개 - 소상공업도우미협회 영천지회 (0) | 2007.03.10 |
| 영천문화원 풍물단 장학금 기탁 - 영천공설시장 지신밟기 수익금 (0) | 2007.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