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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고개는 열두고개, 영천 땀 고개는 한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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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들 많이 드시고 진솔한 삶의 얘기들 좀 많이 들려주세요.”
대구·경북지역학습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학생들은 임고면 선원1리의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에게 술과 음식을 정성껏 대접하며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20여분의 마을 어르신들은 이들의 대접에 어떻게 보답해야 되느냐며 도리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구비문학 채록을 위해 영천을 방문한 방송대 학생들은 먼저 영천공설시장에서 ‘영천오일장엔 특별한 맛이 있다’란 주제로 KBS-TV ‘생방송 세상의 아침’에 출연하기도 했던 이휘자씨(70)가 정직과 정성스러운 맛을 자랑하며 48년째 운영하는 희망식당에서 돼지고기를 사고 인근 슈퍼마켓에서 막걸리와 음료수, 과자 등을 잔뜩 준비했지만 선원마을로 들어서며 걱정이 앞섰다.
먼길을 달려왔는데 아무런 성과도 못 거두고 돌아가게 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녹음기와 카메라를 점검하고 어르신들이 말문을 잘 여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원들간의 역할분담도 마쳤다.
다행히 전통을 자랑하는 선원마을의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아주었고 적적하던 차에 때마침 연륜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어릴 적에 배웠다는 아리랑과 모심기 노래 등을 구성지게 불러주었고 자세한 해설까지 곁들였다.
달성 서씨와 청송 남씨 처녀총각들의 사랑이야기, 석자수건과 지부자수건의 용도와 매는 법, 먹는 것이 중요시되던 옛날 모심기를 시작할 때부터 오전, 점심, 마칠 때까지의 상황에 따른 노래까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노동요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장두표씨(73)는 노동요에 관한 한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 1932년 자양면 용산리에서 태어나 영천댐 건설로 인해 1979년 이 마을로 이주한 장씨가 어렸을 때 바로 앞집에 살았던 30년 정도 연상인 송끝출씨가 장가도 못간 자신의 신세타령조로 곧잘 불렀다는 아리랑은 당시 민중들의 한과 의식을 잘 대변해 주었다.
지난해 당시 영천신문의 강태옥 기자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고 최은하 기자(현 편집회사 미루나무 경영)의 녹음에 이어 이소라 민속음악연구소 대표에 의해 채보된 ‘아리라리’는 강원도어러리를 바탕으로 하여 자진아라리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후렴구에 아리랑 대신 아리라리(또는 아롱아롱)가 들어가고 메김구에 영천지명이 나오는 비(非)고정장단의 곡으로 개성적인 면이 가미된 아리랑이라고 한다.
이소라씨가 채보한 아리라리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 영천읍내-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 / 우리 집이, 저 영감은, 나를 안고 돈다- / 아리라리- 아리라리, 아라리요- 아리라리 고개를 넘어간다 2. 오늘 갈지- 내일이 갈지 모리는데, 에에 / 강낭아, 호박울콩 왜 글케 굵노 / 아리라리- 아리라리 아라리요 아리라리 고개를 넘어간다(넨겨주소) 3. 좌우산천- 동료들아 주막에 가자, 아아 돈벌어, 고향가기 영 글렀다4. 고향은- 점점점- 타관이 되고- / 타관객지, 점점점, 내 고향 된데이 / 아리라리- 아리라리 아라리요 아리라리 고개고개 넘어간다 5. 씨어머님- 죽어라꼬 축수로(축수를) 했디 / 보리방실(방아실) 물부어놓니 씨어마님 생각 / 아롱아롱 아롱아롱 아리리요 오오 아리라리 고개를 넘어간다 몇 해전 남북교류사업의 하나인 예술단의 교환공연 때 불려져 CD 및 녹음테이프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진 ‘영천아리랑’은 일제 말기 일본의 이주정책으로 인해 집단이주를 하게 된 영천사람들에 의해 만주에서 생성되어져 전해지다가 북한의 민족연구가에 의해서 복원되어졌다고 하는데 일제치하 혹독한 총독정부에 항거하여 고국을 등지고 이역의 만주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려진 황무지를 개척하던 한 많은 민족의 설움이 깃들어있다.
지난 2002년 경주 콩코드호텔에서 열린 상담자원봉사자대회에서 영천시청소년상담실 자원봉사자들이 무대에 올라 경상북도의 타시군 관계자들에게 영천아리랑을 선보였을 때 아주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만주에서 만들어져 국내로 들어온 영천아리랑과 토속민들이 만들어 전해져온 ‘아리라리’가 함께 어우러져 우리 영천인들의 정신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대표적인 민요로 자리잡는다면 우리 영천에도 우리 지역민들의 정서를 모을 수 있는 독창적인 문화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구비문학 채록을 위해 영천을 방문한 학생들은 영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도·농 복합의 그냥 조그마한 중소도시로만 느꼈었는데 경상북도에서 경주와 안동 다음으로 문화유적이 많은 곳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임고에서 자양면 소재지까지의 짧은 거리에서 충효가 살아 숨쉬는 고장임을 실감했다고 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을 배향한 임고서원과 철불좌상, 호수 정세아 장군과 아들 의번 공을 기린 환구세덕사, 풍수좋은 선원마을과 경치가 빼어난 함계정사, 하절에 있는 시총과 충노 억수의 무덤과 주위에 산재한 문화재들….
시간의 제약 때문에 그들은 우리 고장의 아주 일부분만 보고 돌아갔다. 꼭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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