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자료/영천 지명유래 및 마을변천사

205. 대재리(大才里)

이원석(문엄) 2011. 11. 17. 17:41

 

1) 마을의 자연환경

채약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일지맥이 연이어져 마을 동편으로 병풍처럼 가리워져 있고 북쪽은 구릉야산이 전개되어 금호강의 강변까지 봉우리가 우 솟아 있으며 넓은 들과 편리한 교통은 예부터 인류가 정착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2) 마을의 역사

▶ 밴마아ㆍ배마실ㆍ대재리(大才里) 해허씨ㆍ밀박씨가 주성을 이룬다. 마을 가운데는 밀양박씨가 세운 서당이 있고, 동네 북쪽에는 김해허씨의 재실이 있다. 그리고 동쪽에 있는 대재못에서 약 200m 쯤에는 조치우 선생의 유후재가 있다.

 

▶ 물방앗간 대재리 서쪽에 위치하며 옛날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어서 주민들이 주로 이용해 왔으며 동네 앞으로 대창천(大昌川)이 북동으로 흘러가고 있다.

 

3) 마을의 특징

- 송청재실(松靑齋室, 대창면 대재리 56-1) : 조선중기의 문신인 조치우(曺致虞)의 재실로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옥비(玉碑)와 함께 전해지고 있다. 선생은 사양원정(司襄院正)으로 봉직하다가 스스로 사직하여 중종반정 후 대구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경내에는 본당을 비롯하여 6동의 건물이 있는데 비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으로 되어있다.

- 유후재(遺厚齋)와 옥비(玉碑, 지정이외 문화재 제140호, 대창면 대재리 210) : 조선중기의 문신인 조치우 선생의 재실로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옥비와 더불어 현존하고 있다. 조치우 선생은 성종 25년(1494)에 진사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사양원정에 이르렀으나 연산군의 학정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사퇴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대구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고 뒤에 송덕비가 세워졌다. 효행이 뛰어나 왕으로부터 소학(小學)과 옥비를 하사받았는데 옥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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