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자료/영천 지명유래 및 마을변천사

118. 용계리(龍溪里)

이원석(문엄) 2011. 11. 14. 08:48

1) 마을의 자연환경

화남면의 북쪽과 군위군의 경계에 있는 경림산(瓊林山)의 바로 아래 산중턱의 남향진 곳에 달산(達山)이 있고 또 북쪽 방가산 중턱에 자리 잡은 곳이 목리(木里)이며, 옛날에는 마을 위쪽에 작은 암자도 있었다한다. 달산 서북편에는 옛날에 퉁쇠 즉 구리를 생산했던 퉁쟁이가 있었으며, 마을 상류의 작은 구멍에서 용이 났다고 전하는 파계 즉 용계(龍溪)는 지금도 한발이 심하면 마을 사람들이 개를 잡아서 그 피를 용의 배꼽이라는 바위에 바르고 그 개의 껍질을 벗겨 그 곳에 널어두고 기우제를 지낸다. 바위에 발라 놓은 피가 씻겨 내려갈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계곡의 언덕과 바위 그 사이에 인가가 전착하고 있으며, 방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이기재와 산의 허리가 마치 말의 길마모양으로 생겼기에 길마재 또 질매재라는 명칭이 붙은 자연부락이 있다.

2) 마을의 역사

달산(達山), 용계(龍溪), 목리(木里)로 되었다. 달산은 뒷산이 경림산(瓊林山)이며, 진주강씨(晋州姜氏) 중시조가 1590년대에 이곳으로 이거해왔다.

▶ 달산(達山) 마을 뒷산의 이름이 경림산(瓊臨山)인데, 이 마을의 형상이 마치 뒷산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목리(木里) 달산 북편의 방가산(方駕山)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위치한 지형이 매우 아늑하다. 옛날 마을 북편 1㎞ 지점에 작은 암자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감나무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 통재이<통장곡(通長谷)>ㆍ통장(通長) 달산 북편 약 5㎞지점에 위치하며, 암석에서 통쇠 즉 구리를 추출해 내었던 제철지(製鐵地)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파계(巴溪)ㆍ용계(龍溪) 달산 동편 5㎞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 상류의 계곡에서 용이 났다고 하여 요즘도 한발이 심하면 마을사람들이 개를 잡아서 그 피를 용의 배꼽이라는 바위에 바르고 그 개의 껍질을 벗겨 그곳에 널어두고 기우제를 지낸다. 그렇게 제사를 지내고나면 바위에 발라놓은 피가 씻겨 내려갈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는 전설이 있고 이 전설에 따라 용계라고 한다.

▶ 이기재 북동편 약 3㎞ 지점인 방가산(方駕山)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 질매재 논 한 두락의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소의 길마를 놓으면 다 덮어버린다는 말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3) 마을의 특징

- 만취정(晩翠亭) : 상주목(尙州牧), 진주목(晋州牧), 진영, 개령 등의 수령을 역임한 만취(晩翠) 강종손(姜終孫, 1524~1584) 선생의 정자

4) 전설

파계(巴溪) 상류계곡에 용이 났다 하며, 지금도 가뭄이 심하면 사람들이 개를 잡아서 그 피를 용의 배꼽이라는 바위에 바르고 그 개의 껍질을 벗겨 그곳에 널어두고 기우제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바위에 발라 놓은 피가 씻어 내려 갈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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