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의 자연환경
봉수산(烽燧山)에서 서쪽으로 뻗은 지맥이 낮아져서 구릉지를 형성하고 다시 북과 서를 감돌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남으로는 큰못이 있어서 마치 하나의 작은 분지모습을 하고 있다. 따뜻한 겨울, 시원한 여름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호읍에서 가장 북쪽에 있으며 사람살기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2) 마을의 역사
▶ 대리(大里) 520여 년 전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이 마을을 개척하여 마을이 크고 평평하다 하여 대리라 불렀다고 하며 당시 이곳에는 고현면(古見面)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미리(美里)ㆍ문귀리ㆍ호미리(虎尾里)ㆍ도미리(都美里) 통일신라시대 합천이씨(陜川李氏)가 이곳에 정착하였으며 골짜기의 생김새와 산의 모습이 마치 여자가 누워있는 듯하므로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남향이며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므로 귀한 곳에 돌아왔다는 뜻으로 문귀리라 하였다. 그 후 인근의 지형을 더 넓게 볼 때 호랑이 꼬리부분이 이 마을 모습과 같다 하여 호미리라 부르기도 했으며, 동네사람들의 마음씨가 비단같이 곱고 선량하다 하여 미리라고도 하였다 한다. 그 후 행정구역 변경으로 대리와 미리를 합하여 대미리라 불렀다.
4) 마을의 특징
- 전설 : 호미리라고 부를 때에는 동네에 힘센 사람이 많았으나 대미리로 변경되고부터는 사람들의 체력이 약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주위의 산맥이 여자가 누워있는 듯한데 대미지(大美池)를 막느라고 누워있는 왼쪽 발을 끊어버렸으므로 항상 비만 오면 붉은 흙이 흘러내리게 되면서 마을이 점차 쇠약해졌다고 한다.
- 대동영당(大東影堂) : 고려 문종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역임하고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낸 최충(崔忠)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드리는 곳이다.
- 만호정(晩湖亭) : 조선 선조 때 통훈대부(通訓大夫) 병조좌랑(兵曹左郞)을 역임한 최만일(崔萬逸) 선생을 추모하여 지은 정자이다.
- 동제(洞祭) : 이 마을 중앙에 느티나무 고목이 있는데 당고사(塘告祀)라 하며 제사를 올리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 및 소원성취를 위하여 과거에는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지금은 중지하고 있다. 이 당나무는 매년 어린잎이 피어나는 상태를 보고 풍흉(豊凶)을 판가름했다고 하는데 즉 잎이 동시에 피면 풍년이 들고 단계적으로 피면 단계적으로 피는 회수만큼 모내기가 수차에 걸쳐서 끝이 나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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