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환경
영천성의 서쪽 동네다. 동쪽으로는 과전동과 인접하였고 서쪽으로는 북천,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가며 강 연안으로는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이 좋은 경관을 이루어 예부터 수많은 시인의 흥취를 돋우었다. 또한 북쪽으로는 교촌동과 경계를 이루고 특히 서남쪽에 남천과 북천이 합류하여 금호강의 상류를 만들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성내동은 여러 지역의 자연부락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지난시대 성 안쪽의 서편 마을인 성내동을 비롯하여 성밖 서쪽의 구호동(九湖洞), 서남쪽의 지소동(紙所洞), 그리고 동쪽의 과전동과 인접한 서과동(西果洞) 일부, 지참동 일부가 합하여 명명되었다.
성내동도 역시 내서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내서면이 폐지되고 영천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81년 영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교동(校洞)에 속하였다가 1998년부터 서부동에 속하게 되었다.
▶ 성안ㆍ성내(城內) 본래 영천군 내서면(內西面)의 지역으로 영천읍성(永川邑城) 안쪽에 위치하였으므로 성안 또는 성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호동(九湖洞)ㆍ지소동(紙所洞)ㆍ서파동(西派洞)ㆍ지참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성내동이라 해서 영천면에 편입되었다.
▶ 구태ㆍ구터(구-) 영천여자고등학교 앞 철도 건너편 마을이며 옛날 이곳에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강 건너 오수동(五樹洞)에 역촌(驛村)이 생기면서 그곳으로 옮겨간 사람들이 옛날에 살던 동네라고 하여 구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구청통(舊淸通) 성안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청통면(淸通面)에 속해있었으나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내서면(內西面)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영천읍에 편입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생이골ㆍ성당골(聖堂-) 성당아래 골짜기에 상여를 보관하는 곳이 있었으므로 생이골로 불리어지게 되었으며 비만 오면 도깨비가 나타난다 하여 그곳에 가기를 꺼려하였다고 한다. 후에 언덕에 천주교회가 세워지면서 다시 성당골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소전껄ㆍ서문터(西門-)ㆍ서문통(西門通) 영천에 오는 사람이면 서문을 거쳐야 한다는 뜻에서 서문통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곳에 우시장이 있었는데 지세가 세어서 밤마다 징징 우는 소리가 나므로 이때마다 소가 밟아주면 기세가 꺾인다고 하여 소전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유정숲(柳亭-) 버드나무 숲이 울창하였는데 어느 선비가 이곳을 지나다가 숲은 좋은데 정자가 없어서 아쉽다고 하여 버드나무에 정(亭)자를 써 붙였다. 그때부터 유정숲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구호동(九湖洞) 성안 서쪽에 있던 마을로 지금은 서문로터리와 주변에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안쪽에 주택이 들어서있다.
▶ 지소동(紙所洞) 성안 남쪽에 있던 마을로 이곳을 흐르는 금호강변에 종이를 만드는 곳이 있어 지소(紙所)라고 불렀으며 현재는 강변의 비탈진 곳에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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