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답사와 여행이야기(이원석 편집위원)

잊혀진 문화유산-영천 임고면 고인돌

이원석(문엄) 2009. 4. 23. 18:06

신석기시대를 막 지나 청동기시대로 접어들어 농경사회가 정착할 무렵인 BC1000년. 영천시 임고지역에 용맹과 힘을 가진 무리의 우두머리인 군장(君長)이 등장한다.

 

군장은 임고지역에 산재한 부족들의 세력을 결집해 나가는 한편 자신의 권력을 보전하기 위해 추종세력 즉 지배계급을 곁에 두게 된다. 군장은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경계석으로 선돌을 세워 이 지역에 강력한 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세를 넓힌 것도 잠시 군장은 죽음을 맞는다. 죽은 군장의 뒤를 이어 2인자였던 젊은 군장이 등극한다. 새 군장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부족민을 동원, 이곳에서 6km 가량 떨어진 금대리 또는 더 먼 곳 자양면에서 위대한 군장의 지석묘에 쓰일 큰 돌을 운반해 온다. 굄석을 양쪽으로 박은 뒤 그 안에 청동창과 청동검, 돌칼, 반달돌 등 평소 군장이 애용하던 물건을 넣고 덮개돌을 얹는다.

 

# 덮개석 가로 세로 2m 장방형

 

임고면에는 영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인돌이 있다. 이 지역의 공식지명은 양평1동. 하지만 마을이름은 고인돌이 있다고 해서 ‘돌배기’다. 영천에서 국도 28호선을 타고 포항방면으로 향하다 조교삼거리에서 좌회전, 임고중학교 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 임고면 양평1리 ‘돌배기’ 마을에 있는 고인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고인돌은 1기뿐이다. 그러나 덮개석이 가로 세로 2m에 이르는 장방형으로 단일 규모로는 영천에서 가장 크다. 규모로 봐서는 이 일대에 강력한 부족이 존재했다는 것과 수장자가 상당한 세력의 부족군장이었던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돌배기고인돌은 전형적인 남방형 고인돌로 주로 판석이나 댓돌 등을 사용해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덮개돌과 돌방사이에 3, 4개 혹은 그 이상의 받침돌을 세웠다. 현재 우리나라에 분포된 고인돌은 3만여기. 세계 6만여기의 고인돌 중 절반이 우리나라에 집중돼 고인돌천국으로 불리고 있다.

 

영천에는 117개의 고인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수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고인돌이 가장 많은 지역인 강화의 120개와 거의 같은 수치다.

 

그러나 강화와 영천은 고인돌에 대한 인식차이가 엄청나다. 강화는 지난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고인돌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영천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인돌이 1기도 없다.

 

# 1기도 문화재 지정 못받아

 

향토사학자 이원조(44)씨는 “고인돌뿐 아니라 도내 3위의 문화재 보유지 영천시에 제대로 된 발굴연구소 한곳이 없다”면서 “영천의 역사와 유물에 대한 조명을 위해 전문발굴조사단 또는 문화재연구소 등이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고인돌사랑회(www.igoindol.net) 김영창(56) 부회장은 “조선시대와 신라 때의 유물과 유적도 중요하지만 고인돌에 대한 연구도 우리의 장묘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중요하다”면서 “고인돌이 세인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사이 도굴과 무분별한 개발로 많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헌적 사료가 없는 선사시대의 유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이유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imaeil.com(2004-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