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의 자연환경
기룡산 지맥의 한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달리다가 마을에 이르러 끊겨졌으며, 마을 앞 서쪽으로 방가산(方駕山)의 지맥이 뻗어내려 봉기(鳳基)덤을 만들고 그 덤 아래로 금호강의 지류인 고현천이 굽이쳐 흐르고 있으며 국도35호선이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다. 산은 얕고 들은 넓어 예부터 사람 살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왔다.
2) 마을의 역사
520여 년 전 조선 중종 때 안우곤(安遇坤)이란 선비가 마을을 개척했으며 봉황산 밑에 자리 잡았다고 하여 봉화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철종 때 행정구역이 신녕현에 속했다하여 신녕땅, 영천군에 속했다 하여 영천땅이라고 불리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오동이 지번상으로 봉하리로, 신녕땅은 오산지번으로, 영천땅과 강변마을은 오리지번을 쓰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오동으로 통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돌가래ㆍ웃가래ㆍ아랫가래ㆍ오동(梧洞) 옛날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동이라 이름지었으며 오동나무 속이 빈 것 같이 마을 가운데가 비어있어야 한다는 전설에 따라 마을 가운데는 집을 짓지 않고 공터로 둔다고 한다. 들 가운데 위치한 마을로 북동쪽으로 웃가래 마을이 있고 그 아랫마을을 아랫가래라 한다.
▶ 갱빈덤<강변-(江邊-)> 금호강 지류 강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고 하여 갱빈덤이라 불리우며 청송행 국도변에 접하여 있다.
3) 전설
▶ 봉기덤 : 마을의 서쪽에 병풍처럼 둘러진 이 덤은 옛날부터 수목이 울창하고 경치가 빼어나서 봉황이 살았다하여 봉황산(鳳凰山) 또는 봉기덤이라 하며 또한 해일이 일어 천지가 개벽할 때 봉(鳳) 한 마리가 앉을 만큼 남았다하여 봉기덤이라 한다는 전설이 있다.
4) 마을의 특징
- 제오헌(霽梧軒) : 광해군 시대에 동궁(東宮)에 시강하던 안응의(安應義) 선생의 강학소
- 죽송양화당(竹松揚花堂) : 중종시대의 문인으로 황해도 찰방을 역임하고 당시 일어난 기묘사화를 보고 벼슬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거한 안우곤(安遇坤) 선생의 정자
- 모의재(慕宜齋) : 인조시대 문인으로 추앙을 받았던 안진경(安振敬), 안진성(安振誠) 선생의 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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