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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문화학교와 아버지께 선물한 천상의 소리

이원석(문엄) 2010. 12. 15. 07:55

이원석 편집위원 ycn24@hanmail.net

   
▲ 이원석 편집위원

한 종합병원의 병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와 문병 온 오랜 친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환자 : 우리 어릴 적 생각나나? 풀피리와 하모니카를 불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했었지? 그 추억의 아름다운 하모니카 선율을 다시 듣고 싶어지네. 자네, 나를 위해서 하모니카 연주를 해줄 수 있겠나?

친구 : 미안하네. 옛적에 잠깐 불다가 그만 둬서 이젠 하모니카 소리를 내지 못할 것 같네.

환자 : 그렇군. 힘든 시기를 살아오느라고 우리가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했는가 보네. 아무튼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네.

어느 날 친구가 영천문화원 옆을 지나고 있을 때 아름다운 하모니가 어우러진 하모니카 연주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가 친구의 발길을 끌었다.

선생 : 어르신, 어떻게 오셨습니까?

친구 : 이곳을 지나는데 아름다운 연주에 그만 저도 모르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선생 : 하모니카를 좋아하시나요? 그럼, 함께 배우시지요.

친구 : 그래도 될까요? 사실은 병원에 누워있는 소꿉친구가 내가 연주하는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는데….

선생 : 그럼 더 잘 됐네요. 열심히 배워서 친구분에게 연주해주시면 되겠네요. (학생들에게) 이 어르신과 함께 배워도 괜찮겠지요?

학생들 : 예, 물론입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친구와 하모니카 수강생들이 환자의 병실을 찾았다.

친구 : 여보게, 자네에게 하모니카를 불어주기 위해 지난 3개월간 영천문화원에서 열심히 연습했다네. 실력은 없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겠네.

환자 : 고맙네.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하네.

친구와 함께 하모니카 수강생들이 ‘메기의 추억’과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고 환자는 옛 생각을 하며 감회에 젖었다.

환자 : 친구, 너무 고맙네. 이럴게 아름다운 연주를 듣고 나니 힘든 시대를 힘들고 처절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네. 이젠 죽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네.

관객들의 박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짧은 상황극의 막이 내렸다. 교육을 담당한 신주이 연극교육강사가 가르치는 입장만 아니라면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며 특히 환자역을 한 사람의 연기가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우리조가 우승을 차지해 상품을 부상으로 받았다.

13, 14일 이틀간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2010 지방문화원 어르신 문화프로그램 사업평가 워크숍 첫날 마지막 교육인 ‘아이디어 워크숍’의 한 장면이다.

주변에 있는 7명씩 무작위로 조를 편성해 30분간 극을 만들어서 발표하는 순서였는데 조원들이 진지하게 의논했지만 20여분이 지나도록 진행이 되지 않아 잠자코 있던 내가 급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조원들이 좋다고 했고 내가 환자역을 자청했다.

영천문화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어르신 하모니카반과 병상에 누워계시는 아버지의 상황을 대입한 것인데 교육주제에 잘 맞았던 모양이다.

인생의 제2막을 살아가는 어르신 프로그램은 이 사회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식 65년 이상 된 여기저기 고장 난 사람’이 아니라 ‘65년 시상의 경험과 지혜가 풍부하게 살아있는 사람’으로, ‘집착과 아집, 돈과 명예욕에 포로가 된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새 삶, 새 일 새 희망에 즐거운 포로가 되어버린 사람’으로서의 어르신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내려 파티마병원에 입원해계신 아버지를 찾았다. ‘내가 아버지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대변했을까?’ 생각하며 기력이 많이 쇠해 안타까운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 한 집안의 장남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오신 당신의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항상 당당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오랫동안 당신의 자리를 지켜주세요”

찢어지게 가난하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한 평생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노년이 희망과 보람으로 가득 차고 건강하게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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