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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석호(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
2006년에 헌법재판소가 신문법 위헌심리를 할 때 신문은 私企業이며 社主에 의한 발행의 자유가 언론자유의 핵심이라는 것을 선언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1979년 판결이나 신문시장의 시장점유율 제한이 違憲이라는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1986년 판결이 자료로 제출되었다.
그 결과 상대방이 쉽게 승복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당시 필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반박은 ‘우리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번의 미디어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과 신문이 방송에 참여할 수 있게 된데 대해 ‘언론장악 惡法’이라고 하는 일부의 비난도 ‘우리 현실은 다르다’는 논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연방주의(federalism)국가인 미국에서 州 정부의 자율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역주의(localism)가 언론규제의 중요한 이념으로 작용하고 있는 배경은 도외시한 채 미국에서도 신방겸영규제가 있다고 우기는 답답한 수준을 제외하면 우리의 규제가 과도한 것이었다는 것은 fact이다.
유신헌법으로 언론검열을 상시화한 박 정희 시대에도 신방겸영은 이루어졌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확인이 된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현실은 다르다’고 고집하는 사람들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디지털기술’이라는 것이 이념과 국경을 초월해서 시장을 허물고 또 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신과 방송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우리 역시 1995년에 통신방송겸영 무궁화위성을 쏘아 올리는 디지털기술역량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법제도였다.
우리는 1996년에 디지털기술변화를 담기 위한 방송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놓고 4년동안의 논의끝에 정작 아날로그 시대의 지상파방송사 위치만 공고하게 만든 방송법을 2000년에 만들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확산되고 뉴미디어가 보편화되면서 미국은 통신사업자로 하여금 방송시장 진출이 가능하도록 통신법을 1996년에 개정했고, 영국은 방송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국내외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송법 개정을 같은 해에 했다.
우리만 방송사업자의 종류를 방송법에 못박아놓고 위성DMB, IPTV 등 새로운 디지털기술을 이용한 방송진출이 시도될 때마다 글로벌 흐름을 외면한 결과 일찍이 디지털기술을 받아들인 통신의 축적된 경쟁력이 방송으로 확산되질 못했다. 이는 방송시장이 GDP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이 0.64% 내지 0.67%의 정체 상태에 있음이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의 연차 ‘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서’를 분석한 KISDI 보고서에서 잘 드러난다.
세계 100대 방송사에 포함된 한국 방송사는 하나도 없고, 자체 콘텐츠 제작역량을 가지고 있는 MBC, SBS, CJ, 온미디어의 4개사 매출총액을 합해도 미국 폭스미디어그룹의 6%에 불과하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1993년 12월에 타결된 UR 협상에서 시청각서비스부분을 제외시키면서까지 ‘문화주권’의 콧대를 높였던 프랑스도 늦게나마 방송의 변화물결을 받아들였다. 2008년부터 사르코지 대통령이 미디어개혁을 주창, 그해 9월 발간한 ‘미디어와 디지털’ 보고서에서 무엇보다도 디지털미디어산업의 성장 중요성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올드 미디어 기업은 생존이 불가능하며, 미디어 기업의 생존여부는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치므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대응방향으로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신방겸영허용과 지분소유제한의 철폐는 물론이고 양질의 콘텐츠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탄생을 제도적으로 지원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2008년 세계 디지털 경제 규모가 3조 유로(약5,400조원), 디지털 경제 성장률 6%로 전체 경제성장률의 2배에 달하며, 콘텐츠가 디지털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들어 미디어 분야의 기존 규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재앙이 초래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이는 우리 정부가 미디어법 통과를 위해 주장한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오랫동안의 신방겸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2007년 12월, 방송법 개정을 통해 재정적으로 취약한 지역방송사들을 흡수하여 미디어그룹이 출현할 수 있도록 자본 유입의 길을 추가로 열었다.
디지털기술은 전세계적으로 통신과 방송의 경계를 이미 허물어트렸다. 법으로 막았던 둑이 터지면서 방송쪽의 대응방안으로 각국이 생각한 것이 시장통합을 위한 규제완화조치들이었다. 즉 신방겸영이나 대기업의 참여와 같은 이슈는 우리만 접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의 미디어법 개정은 ‘80년 언론통폐합때 만들어진 한국적 방송시장 모델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손질하였다는 점에서 너무 때늦은 감이 있다. 이를 통해 2013년으로 다가온 방송의 디지털화를 대비했고, 또한 우리 방송사도 향후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기술변화가 아니라 지난 20년간 추진되어 온 통신망과 방송망의 디지털화가 완성되면서 융합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가 국가적으로, 1차적으로 완비됨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융합서비스의 활성화, 일자리창출과 디지털TV, 방송장비 등 관련 산업의 동반 성장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의 미디어법을 그 성격상 ‘미디어산업발전법’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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