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 과연 미래가 있을까?
1. 연고와 인맥이라는 괴물, 그리고 관공서의 홍보예산
지역언론의 취재와 보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유자본이나 경영진·광고주·권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안면과 연고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사실 소유자본과 광고주·권력이 언론보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해당 언론사의 체질이나 성격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경남도민일보처럼 시민주‧도민주‧국민주를 기반으로 창간한 신문은 소유자본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또한 촌지거부 등 기자윤리를 제대로 지키고, 기업의 약점을 잡아 광고를 강요하거나 주재기자 채용조건으로 금품을 받는 등 경영윤리에 어긋나는 짓만 않는다면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대개의 지역언론이 아직도 검찰에 꼼짝 못하는 데에는 바로 그런 스스로의 약점이 있다는 반증이다.
- 첫 보도 후 쇄도하는 로비 거절 어려워
그래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경남도민일보 구성원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건 바로 안면과 연고라는 괴물이다. 지역사회라는 게 워낙 촘촘한 인맥으로 구성돼 있는 데다 지역언론인들 또한 직장에서 벗어나면 이같은 인맥의 그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역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토박이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간부들의 경우 이 같은 곤혹스러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도된 비판기사로 인해 친구나 친지들로부터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는다든지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언론사의 시스템이나 경남도민일보의 특수성을 들어 해명을 해보지만 대개 소용이 없다. 편집권 독립이니 경영·편집의 분리원칙이니를 설명해도 마찬가지다. 기존언론의 잘못된 관행의 뿌리가 워낙 깊은 탓이다.
경남도민일보의 한 전 편집국장은 고위공무원인 절친한 친구에게 아무리 이런 사정을 설명해도 오해가 풀리지 않자 "내가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무릎을 꿇고 빌라면 열 번이라도 빌겠다. 그러나 신문보도만은 나도 어쩔 수 없다. 제발 그것만은 이해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지역의 언론환경이 이렇다 보니 고발 또는 비판기사에 대한 '속보(후속보도)'가 잘 안나오는 게 지역언론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속된 말로 '한번 물었다 하면 놓지 않고 뽕을 빼주는 기사'가 드물다. 첫 보도가 나간 후 온갖 인맥과 연고를 통해 들어오는 부탁과 호소를 끝까지 거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그런 호소에 시달리다 보면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저 사람 부탁을 끝까지 거절하나" "이만큼 경각심을 줬으니 이후 조치는 해당 기관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약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그렇잖아도 비판기사를 얻어맞아 침통해 하고 있거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속보거리를 얻는답시고 찾아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거냐"고 다그치는 것도 인간으로서 못할 짓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언론의 고발기사는 단발성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선 당연히 후속보도를 기다리게 된다. 고발기사의 대상이 된 기관이나 단체의 반응, 처리과정, 이후의 조치 등에 대해 독자가 궁금증을 갖는 것은 알권리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기자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 지를 끊임없이 챙겨 보도해야 한다. 만일 문제를 지적받고도 적당히 넘어가려는 경우가 있다면, 이 또한 고발기사감이다.
이런 후속보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을 경우 문제를 지적받은 해당 기관이나 단체의 조치도 흐지부지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이미 지역사회에선 이런 관행이 일반화된 느낌도 없지 않다. 한마디로 언론의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 지역언론이 의욕적으로 치고 나온 문제라도 '적당히 저러다 말겠지' 하는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대개 그런 식의 연고나 인맥을 동원한 로비가 통해 왔던 탓이다. 이는 언론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신뢰성마저 심각하게 뒤흔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지역언론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은 언론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크다.
- 배정기준 없는 지자체 홍보예산
비록 권력으로부터는 자유롭다 할지라도 지역언론의 가장 큰 광고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는 지역언론에서도 여전히 골칫거리다. 지역일간지의 가장 큰 수입원인 지자체의 '공고' 예산은 매년 각 신문사별로 연간계약을 하는데, 그 배정기준과 잣대가 전혀 없다. 오직 시장‧군수의 '기분'이 유일한 잣대인 것이다. 따라서 시장·군수들은 이 예산을 '언론 길들이기'를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해마다 예산편성 시기가 되면 각 신문사는 출입기자를 총동원해 시·군별로 치열한 로비전쟁을 벌인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가장 큰 역할로 삼아야 할 지역언론이 자치단체장에게는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신문에서 행정에 대한 두리뭉술한 비판기사는 많아도, 도지사나 시장‧군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찾아보기 어려운 사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다 그런 기사가 나가더라도 끝까지 결과까지 이끌어내는 후속보도가 없는 것도 그런 배경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가운데 지역언론에 대한 독자의 신뢰는 갈수록 멀어지고 영향력도 줄어든다. 그럴수록 관공서 홍보예산에 대한 신문의 의존도는 높아진다. 바로 이게 지역언론의 딜레마다.
2. 지방에 ‘보수언론’은 없다, ‘기회주의 언론’만 있을 뿐
얼마 전 내가 몸담고 있는 신문에 '민주적 참여기업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6200여 도민주주의 힘으로 창간한 경남도민일보를 진보학자들이 주장하는 대안기업의 모델로 만들어보자는 내용이었다.
칼럼이 나간 뒤, 곧바로 이런 비난이 들어왔다. "그것 봐라. 노동조합의 목표가 바로 이런 좌파언론을 만들자는 것 아니냐. 칼럼에 인용된 장상환 교수야말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빨갱이 교수이지 않느냐. 이번 경남도민일보의 경영진 사퇴파동도 결국 노조의 이런 좌익 성향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 기득권세력의 걱정은 '원칙과 정도를 걷는 언론'
황당한 논리였지만, 나는 그분이 결코 우익이어서 그런 비방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또한 우리 사회를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보는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굳이 가르자면 '기회주의자와 비기회주의자의 대립'으로 보는 게 오히려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지역언론도 마찬가지다. 나는 한국의 지역언론 중 '보수언론'은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지역언론은 '기회주의 언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칙과 정도를 확실히 지키는 언론이 생긴다는 건 지역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에게 위협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전국의 모든 지역일간지는 독재정권에 철저히 순응해온 전력이 있다. 예외적으로 이승만 정권시절 대구매일신문이 <학생을 도구로 이용하지마라>(55년 9월 13일, 최석채)는 사설로 저항한 적이 있는 정도다. 그러나 천하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이승만은 오히려 박정희나 전두환에 비해 언론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탄압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이승만 치하에선 어느 정도 언론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61년 5월 16일 이후 언론은 철저히 독재정권의 선전지로 전락했다. 어떤 지역일간지도 감히 정권의 비위에 거슬리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심지어 단순한 실수조차 보안대나 중정‧안기부 지부‧지소에 끌려가 군화발로 정강이뼈를 깨이기 일쑤였다. 특히 80년 언론통폐합은 지역언론인들을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놓았다. 서울에선 그나마 정권에 항거하다 해직된 언론인들도 있었지만 지역에선 그런 사람조차 없었다.
언론통폐합은 비판적인 언론과 언론인을 싹쓸이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음란‧퇴폐언론과 사이비기자를 일소하는 양면을 갖고 있었다. 삼청교육대가 비판적인 인사들을 손보는 의미도 있었지만 진짜 깡패들도 잡아갔고, 부정축재자에 대한 사정이 정적을 제거하려는 의도였지만, 진짜 부패한 관료를 처벌하기도 했듯이….
어쨌든 그때부터 언론은 안기부나 보안대, 도경의 보안수사대에서 발표하는 수사결과 보도자료를 사회2면을 털어 거의 전문을 실었다.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이곳은 아예 취재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자기들이 발표하는 대로 충실히 보도하기만 하면 됐다. 이는 보도지침과 별도로 언론계의 결코 바뀔 수 없는 불문율이었다.
이런 관행은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도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도 지역의 국정원이나 기무사, 경찰의 보안수사대 등은 여전히 취재의 성역으로 남아있다. 멋모르는(?) 기자가 취재하려 하면 그곳에 근무하는 수사관들도 "이상한 놈이 다 있네?"하는 표정으로 기자를 본다. 이런 관행은 각 언론사의 부장급 정도 되는 고참 기자들의 뇌리 속엔 뿌리 깊은 금기의식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막연한 두려움이다.
- '될 놈에게 붙는' 지역언론의 선거보도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권력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이것은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언론인들은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면서도 속으로는 한없는 겁쟁이들이다.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시장·군수, 도의원이 신문사를 어쩌지는 못하겠지만, 고참 기자들의 뿌리깊은 의식 속에는 '밉보여서 덕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그래서 대체로 선거보도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비위를 특별히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이뤄진다. 또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어느 정도 경합이 될만한 후보라면 역시 그의 비위도 거슬려서는 안된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여당과 야당후보 양쪽에 정치자금을 제공함으로써 보험에 드는 심리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영 당선가능성이 없는 군소후보는 철저히 무시한다. 참으로 소심하고도 비겁한 태도다.
대통령선거에서 화끈하게 편파보도를 한 조‧중‧동은 그래도 소신있는 언론이다. 지역언론과 지역언론인들은 그럴만한 용기도 없다. 서울일간지 중에서는 그런대로 수구‧우익‧보수지로 볼 수 있는 신문들이 있지만, 지역지 중에서는 제대로 된 보수도 없다. 지역지의 성향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무조건 '힘있는 놈한테 붙는 논리'다.
3. 개혁 달성한 언론만 선별 지원해야
내가 일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98년 IMF 경제난 속에서 6200여명의 시민주주를 모아 창간한 신문이다. 다들 무모한 짓이라 했지만 우린 창간에 성공했고, 지난 4년 간 그야말로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신문을 만들어왔다. 기존의 지역언론들이 토호‧기득권세력의 대변지로 전락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제대로만 한다면 어렵잖게 성공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창간 5년째로 접어든 지금 우리는 그 믿음이 너무 순진했음을 느끼고 있다. 명색이 ‘개혁신문’인데, 연감을 만들어 강매할 수도 없고 ‘대포광고’를 때릴 수도 없다. 관공서나 기업체에 은근히 압력을 넣어 광고를 따내던 시대도 지났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경영혁신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제대로 컨설팅 한번 받아볼 돈도 없다. 이미 기자들 사이에선 “언제까지 이슬만 먹고 살라는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 거대언론 물량공세 저지 ‘계란으로 바위치기’
무엇보다 우리를 암담하게 만드는 건 장차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적자행진은 계속되고 있는데, 광고나 독자가 더 늘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독일제 아트라스 낡은 윤전기가 자주 말썽을 일으키지만, 중고품도 수십 억원이나 하는 윤전기를 바꾼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지역주민의 ‘촌 신문’에 대한 천시와 불신은 여전하고, 인터넷의 확대로 젊은 세대와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져만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거대언론의 물량공세를 이겨내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결국 대안이라고 나오는 이야기라는 게 ‘대자본을 물어오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터무니없는 환상이라는 건 이미 토착 대자본이 소유해온 수많은 지역신문의 사례나 경험으로 뻔히 알 수 있다. ‘개혁언론’의 정체성은 퇴색되고 ‘매판언론’으로 변질돼 똑같은 고통을 연장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우리가 이럴진대 이미 ‘매판언론’에서 고통받고 있는 언론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다. 최근 노조위원장을 맡아 언론노조 중앙위에 참석해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전국에 지역일간지가 60여 개라는데,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12곳뿐이라는 것이었다. 노조의 유무가 언론민주화의 척도는 아니겠지만, 노조마저 존재할 수 없는 지역신문사가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 신문에서 언론개혁이나 편집권 독립·공정보도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소유구조 건전성‧편집권 보장 등 따져야
경영이 부실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신문사일수록 광고 강요나 신문 강매를 비롯해 협박‧공갈‧촌지 수수‧왜곡보도 등 사이비 짓을 많이 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런 신문사는 ‘경영’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기자들을 동원해 관공서나 기업체를 상대로 광고를 협박 반 애걸 반으로 따내는 낡은 수법만이 존재한다.
지역언론 육성이 반드시 언론개혁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혹자는 특별법에서 소유구조의 건전성이나 편집권독립·경영투명성‧사주의 도덕성‧주재기자 운영의 투명성‧노동환경과 임금 등 지역언론 지원자격을 너무 엄격하게 할 경우, 과연 그 범위에 들 수 있는 지역신문이 한 두 개라도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단 하나도 없을 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개혁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전제되지 않은 채 지역언론에 지원해 줘봤자 말 그대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밖에 안된다. 또한 지역민으로부터 원성만 사는 신문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4. 부패사슬 서울언론, 지역언론 '자정' 본받아라
“정말 남사스러워 못살겠다.” “기자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에이, 추접은 자식들, 월급도 많이 받는 놈들이" “있는 놈들이 (돈을) 더 밝힌다는 건 기자도 똑같아.”
최근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로 수십명의 기자들이 연예기획사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데 대한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의 반응이다. 이번에 혐의가 드러난 것은 주로 스포츠지 기자와 방송사 PD들이지만, 종합일간지도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순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지난 3월 영화사 비리수사에서도 사법처리까지 받은 사람은 스포츠지 기자들이었지만, 종합일간지 기자들은 촌지 수수액이 500만원 이하라는 이유로 입건대상에서도 빠졌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500만원 이상 수수한 기자는 입건, 1000만원 이상은 불구속 기소, 2000만원 이상은 구속이라는 기준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다고 한다. 통상 검찰은 사법처리 대상자가 너무 많을 경우 이런 식으로 돈의 액수로 ‘봐주는 기준’을 정하는 일이 많다. 기자 촌지의 가이드라인이 500만원 이하라면 그 이하의 촌지수수관행이 얼마나 만연돼 있는 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계와 가요계 비리 말고도 기자들의 촌지추문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패스21사건으로 드러난 벤처기업과 언론의 유착(2002년 1월), 금감원 촌지살포사건(2002년 4월), 민주당 출입기자에 촌지살포사건(2001년 8월), 한나라당 출입기자에 촌지살포사건(2002년 7월) 등 1~2년 사이에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만 해도 이 정도다.
서울 기자들의 도덕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 또 있다. 심지어 음식점 소개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에 실린 ‘스포츠지 돈받고 음식점 소개 물의’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스포츠지들이 ‘편집국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음식점 소개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100~300만원씩의 돈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놀랄 일은 이런 수익사업(?)을 아예 드러내놓고 너무나 떳떳이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광고면이 아니라 기사를 써주고 돈을 받는 건 엄연히 대가성 뇌물이며, 독자를 기만하는 사기행위나 다름없다.
흔히 ‘지방지’라고 부르는 지역일간지에도 한동안 이런 유료기사들이 있었다. 이른바 ‘이달의 시‧군정’이라는 제목으로 매월 도지사나 시장‧군수의 사진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역점사업을 소개하는 기사가 그것이었다. 이 또한 광고면이 아닌 기사면에 출입기자의 이름까지 버젓이 달아 보도하면서 ‘홍보비’명목의 돈을 자치단체로부터 받아왔다. 일부 회사는 그 돈을 출입기자와 일정비율로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또 어떤 단체장이 취임한 후 써주는 인터뷰 기사나 ‘취임 100일’ 또는 ‘취임 1년’ 특집기사 형식으로 나가는 것도 대부분 유료홍보기사였다. 이런 홍보기사를 좋아하는 단체장들은 심지어 취임인터뷰-취임 한달-취임 100일-취임 1년-취임 2년식으로 쉼없이 특집지면을 사는 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관공서는 해당 출입기자가 쓰는 기사를 일일이 ‘비판기사’와 ‘홍보기사’로 구분해 통계를 내고, 홍보기사 1건당 가산점을 매겨 그 점수로 홍보비 금액을 책정, 지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이런 관행은 민선단체장 시대에 들어와 대부분 사라졌다. 이와 함께 시·‧군에서 대량으로 신문을 구입, 통반장들에게 무료로 투입하던 ‘시‧군정홍보지(계도지)’도 2000년 들어 완전히 사라졌다. 행정기관의 일방적인 홍보자료를 그대로 지면에 싣는 비율도 크게 낮아졌다.
불과 3~4년전만 해도 지역일간지의 1면 톱은 행정기관의 시책홍보성 기사가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그런 관행을 깨는 데는 99년 <경남도민일보>의 창간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은 경남의 다른 지역일간지들도 그런 식으로 신문을 만들지는 않는다.
촌지 관행도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창간 때부터 회사차원에서 일체 촌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올해 들어서는 기자회가 앞장서 세세한 항목까지 담은 기자실천요강을 발표했다. 마산MBC도 기자들이 스스로 촌지근절을 결의했고, 최근에는 <경남신문>도 내부적으로 자정결의를 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기자실 개혁도 경남이 가장 앞서가고 있다. 이는 전국의 공무원노조운동을 경남이 사실상 주도하고 있고, 경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을 비롯한 언론운동이 비교적 활성화돼 있는 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경남도민일보>에 이어 <경남신문> 노조가 이에 적극 동참키로 하는 등 언론계 내부에서도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민언련 강창덕 대표는 “언론개혁에 관한 한 경남이 전국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라며 “지역에서 형성된 언론개혁의 강풍이 서울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건전한 지역언론을 선별적으로 육성‧발전시키는 것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미 지역언론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의 관언유착 관행에 대한 지역독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쉽게 걷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지방지=사이비언론’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이는 지역언론이 스스로 만든 ‘원죄’이다. 과거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부정적 유산을 지금의 후배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게 억울한 점도 있지만, 이는 어차피 지역언론이 돌파해야 할 과제다. 이런 차원에서 지금 진행중인 기자실 폐쇄문제도 지역언론이 더 적극적으로 받아 안을 필요가 있다.
또한 언론개혁의 흐름은 안중에도 없이 지역언론의 물을 흐리는 일부 미꾸라지 같은 진짜 사이비언론과 사이비기자를 도태시키기 위한 대책도 공동으로 강구해볼 것을 제안한다. 최근 <경남도민일보><경남신문><경남일보> 노동조합이 서울지의 무분별한 경품공세에 공동대응키로 합의한 것이 좋은 사례다. 서울지의 지방잠식과 함께 사이비언론의 폐해도 지역언론 발전의 심각한 적들인 것이다.
5. ‘중앙지’라는 말부터 없애자 - 이제 그들을 ‘서울지역 일간지’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얼마 전 지역의 타 신문사 노동조합 간부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는 기회가 있었다. 술이 어느 정도 오르자 그들 중 한 분이 나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약 2년 남짓 미디어면을 담당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내가 썼던 기사에 대한 불만이었다.
지역의 일간지 가운데 미디어면이 있는 곳은 경남도민일보 뿐인 터라, 취재대상이 된 지역언론인들로선 거부감이 들만도 했을 것이다. 항상 남을 취재하는 입장에 있던 기자들이 막상 취재를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되자 생소하기도 했을 테고, 좋은 일도 아닌 나쁜 일들이 남의 신문 지면에 나오니 기분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 지방분권 가로막고 서울중심주의 고착화시키는 조‧중‧동
하지만 그 분의 말은 “솔직히 말해 경쟁지가 파업을 하고 부도까지 나니 은근히 망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 분의 말대로 당시 내 마음 속에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컨대 ‘저러다 정말 신문사 문닫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까진 했으되, 문 닫길 바라는 마음은 결단코 없었다고 자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수년 전부터 지역의 다른 일간지들을 ‘경쟁상대’라고 보는 시각을 일찌감치 바꿨기 때문이다. 그건 다른 일간지들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작 우리의 경쟁상대는 따로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굳이 우리지역의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조선‧동아‧중앙 등 3대 ‘서울일간지’가 전국 모든 지역에서 70% 이상을 점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지역일간지들끼리 제살 뜯어먹기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따라서 나는 지역일간지들이 함께 힘을 모아 조‧중‧동을 지역 신문시장에서 쫓아내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만한 충분한 명분과 논리도 있다. 이들 ‘서울지역 일간지’들이 지방분권을 가로막고 서울중심주의를 고착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들은 하루에 지면을 40페이지에서 무려 60페이지까지 제작한다. 그러나 그 중 지역소식을 전하는 지면은 고작 1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도 부산‧울산‧경남을 묶어서 낸다. 어떤 신문은 대구·경북까지 한데 묶어 ‘영남판’을 내기도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경남을 취재하는 각 서울지 기자는 1명이 고작이다. 반면 지역일간지의 경우 1개 신문사에서 마산‧창원‧진해에만 약 30~40여명의 기자가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도내 시군을 모두 합하면 취재기자만 50~80여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서울지’들이 지역의 신문시장을 거의 장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내고, 그들이 고착화시킨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중앙집권 문화 때문이다.
진정한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려 지금과 같은 서울중심주의가 사라지게 되면 서울지역 일간지가 다른 지역에서 잘 안팔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처럼 서울지가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가 서울에 집중돼 있는 구조 때문이다. 지역에서 인재가 나도 서울로 가버리고, 돈을 벌어도 서울로 가져가 버린다.
- 지역 신문시장 장악한 '서울지', 지역 소식은 고작 하루 1면
그래서 언론도 소위 ‘중앙지’와 ‘지방지’, ‘중앙방송’과 ‘지방방송’으로 분류된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도 누군가 엉뚱한 말을 하면 “야, 지방방송 꺼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이런 말 속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낮춰보고 업신여기는 의식이 담겨있다.
‘중앙지’는 엄격히 말해 전국을 배포대상지역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에서 ‘전국지’라는 표현이 맞다. 그러나 나는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 차라리 ‘서울지역일간지’ 또는 ‘서울지’라 부르자. 지금 경남도민일보에서는 ‘중앙지’라는 말 대신 ‘서울지’라는 표현이 정착돼 있다. 나는 전국의 모든 지역일간지에서 ‘중앙지’라는 말부터 없애버리자고 제안하고 싶다.
6. “도민주주신문의 주주관리가 이래서야…” - 경남도민일보 주주·독자모임 토론회에서 느낀 것
2003년 12월 19일 경남 마산에서는 좀 특이한 토론회가 열렸다. 경남도민일보 주주·독자모임(준)이 주최하고,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와 기자회에서 후원한 이 토론회의 주제는 ‘도민일보의 힘, 주주와 독자의 역할과 참여 활성화 방안’이었다.
제목은 그럴 듯했지만 사실은 경남도민일보가 드러내놓고 주주와 독자들에게 매맞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지난 8월부터 이어진 경영진 사퇴파동 과정에서 약 40여 개에 이르는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줬고, 5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후원행사까지 열어준 데 대한 일종의 화답이기도 했다.
- 공개적으로 매맞는 자리…거침없는 질타 쏟아져
토론회는 경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강창덕 대표가 사회를 봤고,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윤성효 기자와 밀양 무안초교 정태진 교사,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인식 대표, 내일신문 부산‧울산‧경남 문진헌 본부장, 김주완 노조위원장, 김훤주 기자회장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예상했던 대로 토론회에서는 거침없는 질타와 비판, 제안이 쏟아졌다. “1년에 한번 주주총회 한다는 관제엽서 한 장 보내는 일 말고는 아예 주주에 대한 관리가 전혀 없다. 그러다가 위기에 처하면 주주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한다. 염치가 없다.” “직책이 높아질수록 더 많이 고개를 숙이고 더 많이 뛰어야 한다. 그런데 신문사에서 부장만 달면 대단한 사람인 양 행세하려 한다.” “기자들도 직접 주주와 독자를 접촉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날짜와 시간을 정해 기자들이 정기적으로 주주‧독자에게 전화를 하라. 그러면 주주‧독자들이 뭘 원하는지, 불만이 뭔지를 알 수 있다. 덤으로 기사제보도 받을 수 있고, 독자확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시‧군지역 등 멀리 있는 주주와 독자들에게는 신문사 간부들이 직접 찾아가서 만나야 한다. 시‧군별 순회간담회를 열어라.” “도민일보에 우호적인 지식인 그룹을 조직화하여 그들을 객원기자로 활용하라.” “인터넷을 통해 주주와 정기구독자에게는 일반 네티즌과 다른 혜택을 달라.”
이같은 지적과 제안 가운데 나는 특히 ‘주주·독자에게 전화하기’를 의미있게 생각했다. 성공한 주간지로 잘 알려진 남해신문의 사례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남해신문 기자들은 지금도 신문이 나오면 각자 구역을 나눠 직접 배달을 한다고 한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 신문사 사장 출신인데, 그도 배달구역이 있었다고 한다.
- 기자들이 독자와 직접 만나야 한다.
기자들의 신문배달은 여러 가지 부수적 효과가 있는데, 그냥 신문만 던져놓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 직접 신문을 건네주면서 인사를 하고 지난주 지면에 대한 모니터링은 물론 제보까지 받게 되더라는 것이다. 독자확장과 광고연결 효과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물론 일간지의 경우 기자들의 신문배달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정도 약 2시간정도를 정해놓고, ‘주주·독자에게 전화하는 날’을 시행해보는 것도 적지 않은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주주‧독자모임이 자생적으로 결성돼 뭔가 신문사에 도움을 주기를 기다리거나 기대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신문사에서 직접 나서 그들을 조직화하고 스스로 비판을 수용하면서 협조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날 토론에서 제기된 ‘지역별 주주·독자 순회간담회’는 꼭 실천해나가야 할 것 같다.
한 토론자의 이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경남도민일보의 주주관리는 시민단체의 회원관리보다 못한 것 같다. 6200 주주라고 맨날 자랑만 하면 뭐하나. 제대로 관리도 못하면서….”
7.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
위의 글들은 그동안 기자가 여기저기에 기고했던 글들이다. 그동안 경남도민일보는 ꡐ경영파업ꡑ이라는 기괴한 일을 겪었고,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나름대로 극복했다. 직원들이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직접 사장을 뽑았고, 그렇게 선출된 사장이 의욕적으로 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노조위원장이 이사회에 참석하고, 간부회의에도 참석한다.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경영혁신위원회를 노사동수로 운영하면서 회사의 모든 제도와 시스템을 손질하고 있다. 인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도 노사동수로 운영된다. 편집국엔 평기자 7인으로 구성된 편집제작위원회가 데스크회의(집행부)에 대한 견제기구(의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는다. 사원의 자발성에 기초한 ꡐ참여민주경영ꡑ,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ꡐ민주적 참여기업ꡑ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까 하는 회의도 없지 않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도 막상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극도로 보수적인 모습이 된다. 그래서 혁명보다 개혁이 열배는 더 어렵다는 걸까. 차라리 <내일신문>처럼 탁월한 한명의 강력한 지도자가 아쉽다는 생각마저 든다.
인터넷 시대 종이신문의 효용성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뭔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긴 하는데 딱히 잡히는 게 없다. 과거의 관행(외간, 각종 수익사업)에 의한 매출 늘이기 외엔 다른 대안도 별로 없다. 소액광고는 생활정보지들이 모두 가져가 버렸고, 1000만원 이상 고액광고는 서울일간지가 독식하고 있다. 지역일간지에 남은 건 안면광고, 보험성광고, 관공서 광고 뿐이다.
언제까지 이런 저임금으로 능력 있는 인재들을 붙들어 맬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지역대학의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조차 지역신문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신문의 질은 항상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20대의 신문구독률은 거의 제로인 것 같다. 이대로 가면 종이신문은 10~20년 안에 사망선고를 받을 것 같다. 특히 30~40대가 주구독층인 경남도민일보는 더욱 그렇다. 젊은 독자를 유인할 방법이 없다.
개혁신문, 정론지라는 것도 요즘은 그다지 큰 경쟁력이 못되는 것 같다. 정론을 펴기만 하면 독자는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는 것도 환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중‧동을 지역에서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묘책이 없다. 정말 획기적인 뭔가가 없을까?
김주완(전국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 위원장, 부산울산경남언론노조협의회 의장)-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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