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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재, 전별연 대신 풍물, 하모니카, 민요, 난타공연’

이원석(문엄) 2011. 4. 15. 14:42

‘마상재, 전별연 대신 풍물, 하모니카, 민요, 난타공연’ 
제3차 21세기 조선통신사 한ㆍ일 우정걷기 영천 방문 행사
이원석 편집위원 ycn24@hanmail.net

군위군 의흥면사무소를 출발해 화본, 부산리를 지난 제3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서울-동경 한ㆍ일 우정걷기팀이 14일 오후 2시 신녕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장수(長水), 청통(淸通), 아화(阿火), 모량(毛良), 사리(沙里), 우곡(牛谷), 경역(鏡驛), 조역(朝亦), 인비(仁庇), 의곡(義谷), 압량(押梁), 부평(副平), 청경(淸景), 구어(仇於), 화양(華陽)역을 관할하던 장수도 찰방(長水道察訪)을 생각했다.

   

 

다시 길을 나서 화산면사무소에 도착하니 영천시한일문화교류회(회장 손태국) 회원들과 영남외국어대 일어과(학과장 송의익) 학생들이 마중을 나왔다. 학생들의 합류로 일행이 많이 늘어난 가운데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영천시내로 접어드니 영천문화원 풍물단(회장 최홍철)이 흥겨운 가락으로 반기며 길을 안내해 옛 동헌이 있었던 영천시보건소 마당을 한 바퀴 돌아 6시경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을 위해 전별연(餞別宴)과 마상재(馬上才,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에 기록이 남아있다.)가 열렸던 조양각에 도착했다.

   

 

풍물단의 신나는 공연에 어깨를 들썩였고 기념촬영을 한 후 문화원 강당으로 올라갔다. 영천문화원 이원석 사무국장과 영천시한일문화교류회원인 지에꼬씨의 사회로 하모니카와 민요, 난타공연을 관람했다.

   

 

참가자 소개에 이어 조진호 자문위원의 통역으로 성영관 영천문화원장의 환영사와 일본걷기협회 엔도 야스오 단장의 답사 후 기념품 전달식을 가졌다.

   

 

영천에서 준비한 스타 영천 열쇠고리와 휴대폰 전자파 차단기, 타월, 영천안내 팸플릿, 김덕주 명인이 제작한 안마기, 영천관련 책자 등 푸짐한 선물을 했고 우정걷기팀에서도 기념 페넌트와 티셔츠를 우정의 표시로 전달했다.

   

 

지난 1일 경복궁을 출발해 서울-용인-충주-문경-예천-안동-의성-군위-영천-경주-울산-부산(동래)까지 총 22일간 양국의 걷기 동호회 및 관계자 40여 명이 참여해 총520㎞의 조선통신사 옛길을 답사하게 된다.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조선 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표명하면서 국교 재개와 사절단 파견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돼 조선통신사의 일본행은 한양(서울)에서 에도(도쿄)까지 육로와 뱃길을 합해 왕복 1만1000리를 오가는 10개월간 대장정이었다.

   

 

통신사 파견은 1429년(세종 11) 정사 박서생을 시작으로 1811년까지 200여 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이어졌고 규모는 매번 300-500명이었다.

   

 

이번 행사의 정사는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이, 부사는 김태호 광주대 교수, 종사관은 고양문 울산대 교수가 맡았다.

   

 

행사에 참가한 나카무라 스스무씨는 “옛날 조선통신사가 걸었던 옛길을 한일 양국 민간인들이 같이 걸으면서 선린우호관계와 평화를 느낄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 기쁘다”면서 “환대해준 관계자와 영천시민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8월 15일(기해) 맑음. 신녕에 닿았다. 새벽에 세 사신 및 일행들과 함께 관복을 갖추고 망궐례를 행하였다. 저녁에 신녕현에 이르니 주수 서회수와 군위현감 임용, 성현찰방 임희우, 지례현감 송부연이 보러 왔다.(중략) 이날은 90리를 갔다.

16일(경자) 맑음. 영천에 닿았다. 도백 김상철이 보러오고, 이어 전례인 전별연을 조양각 위에 벌였다. 내가 비록 복제(상복 차림) 중이나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풍악을 울리고 상을 받을 때엔 방안으로 피해 들어갔다. 반나절 동안 순상(도백)과 세 사신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이는 영남의 성대한 모임이므로 구경하는 사람이 거의 만 명으로 헤아려졌다.

 

1763년(영조 39) 조선통신사 정사를 맡은 조엄의 ‘해사일기’에 적힌 내용 중 일부분으로 당시 조선통신사 행렬의 모습과 영천에서의 전별연 장면 및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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