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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득 작가 ‘흔들림-문득, 공간을 느끼다’ 전

이원석(문엄) 2009. 9. 17. 08:42

김호득 작가 ‘흔들림-문득, 공간을 느끼다’ 전 
2009 시안미술관 특별기획전시 10월 10일 오픈
이원석 기자 ycnews24@hanmail.net

시안미술관(관장 변숙희)에서는 10월 10일(오프닝 오후 4시)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김호득 작가의 ‘흔들림-문득, 공간을 느끼다’전을 개최한다.

의고한 필묵기법의 파격, 전통의 파기, 나아가 작가 스스로 파괴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새롭게 탄생하는 창조의 역설을 보여주는 작가. 그동안 기운생동의 현대적 변용을 시도하고 수묵화의 새로운 전통을 확장시킨 김호득을 간략하게 서술하는 문장이다.

   
▲ 한지와먹물. 설치. 2009
스스로를 질풍노도 속에 던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차례 넘나드는 체험을 한 그에게 ‘측량할 길 없는 근원적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화두로의 몰입은 당연한 예술적 귀결이라 하겠다.

지난 봄, 일 년 전부터 시안미술관 전시를 준비해온 그에게 예기치 못하게 닥친 위험한 수술도 이번 전시를 실현시키려는 작가의 의지를 결코 꺾지 못했다.

시안미술관 1층에서부터 3층의 모든 전시장은 수묵화의 본질인 획, 그리고 획의 시원인 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작가와 유희하는 공간, 마침내 신체와 정신이 합일하는 공간의 탄생으로 완결된다.

작가는 작년 겨울부터 한지 반죽으로 납작한 점들과 손의 궤적이 생생하게 응집된 작은 입체를 수 백 개 만들었다. 눈을 감고 촉각의 묘미를 탐닉한 한지 입체 작업은 가시적인 세계 너머 사의(瀉意)적 세계로 한층 더 나아간 결과이다. 이는 1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그의 「흔들림-문득」 연작의 연장 작업으로서 그것이 공간으로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안미술관 1층 첫 번째 공간에서는 전시장 벽면 그 자체와 종이에 콩테와 검은 안료를 작가의 치열한 손동작으로 접착시킨 드로잉 작품들과, 손의 흔적이 결정(結晶)된 한지 입체작업이 서로 대비하는 동시에 교류한다.

두 번째 공간에는 바닥에 놓인 붓질의 반복으로 먹이 완전히 침투된 검은 종이와 흰 종이가 쌓여있다. 이는 흑과 백으로 분리된 먹과 여백 너머에 있는 근원적 세계에 대한 물음을 묵시적인 검은 획의 분리와 만남으로 해석한 「사이」 연작의 공간 이동이라 하겠다.

1층 마지막 전시장 바닥엔 관람자들의 눈길을 기다리는 각각의 표정을 지닌 한지 입체작업들이 놓여있다. 2층 전시장에는 보일 듯 말 듯, 움직이듯 정지된 점들이 한가롭게 부유하는, 검은 연못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 바닥으로부터 조금 높게 조성되어 있다. 관람자들은 이 공간을 산책할 수 있다.

마지막 3층 전시장은 천정에서부터 바닥으로 점진적으로 떨어지는 여백으로 충만한 한지들이, 먹물로 채워진 야트막하지만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수조에 반영되는 공간이다.

또한 잔잔한 진동을 멈추지 않는 수조의 물결은 미풍으로 나뭇잎이 일렁이듯 천정과 벽면에 미세한 선들의 순환을 끊임없이 생성하면서 생명력의 원천을 반영하고 있다.

보일 듯 말듯 멈추지 않는 물의 움직임은 세상의 첫 아침에서부터 우리의 기억을 은유하는 매체가 되어왔고, 만물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가는 대로 스스로를 맡길 줄 아는 무위자연의 섭리를 작가와 관람자들 모두에게 숙고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충격가치’가 범람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유행이 변하는 오늘날 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을 생명력의 원천을 간결하나 밀도 있는 방식으로 보여줄 김호득의 시안미술관 전시는 관람자들에게 잃어가는 삶의 본질이 가진 가치, 관조와 성찰의 고요한 울림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50년 대구에서 출생한 김호득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미술학부 동양화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